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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천주교 마재 성가정 성지 & 다산 생태 수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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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품에 안고 슬퍼하시는 어머니 마리아. (십자가의 길 제13처)

 

 

마재 성가정 성지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116.  (의정부 교구)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4형제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마재는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이자 신앙의 태동지입니다.

4형제 중 정약종은 천주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린 순교자로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 되었고,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오른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 바오로와 딸 정정혜 엘리시벳도 이곳 마재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마주 서로 만나는 양수리에서 팔당땜 방향으로 3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왼쪽으로 입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혹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어 마치 한강 물을 지키는 파수꾼 같습니다.

그곳에 한옥으로 예쁘게 지어놓은 '마재 성가정 성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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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가족 나드리길을 남양주에 자리 잡은 마재 성가정 성지로 정하고

마재 성가정 성지 순례후 그 주변 다산 생태 수변공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왔습니다.

 

 

성가정 동산 안쪽에 옹기로 쌓은 탑의 가톨릭 상징 키로(Px)

 

Px (키로) : 가톨릭 상징으로도 여겨지는 Px (키로)는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약자로서 처음 두 글자 X와 P를 따서 겹친 모양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란 그리스어로 '구세주'라는 뜻으로, 원어로 쓰면 '크리스토스(ΧΡΙΣΤΟΣ)'입니다.

 

 

옛 능내역 (현:폐쇄)에서 좁다고 생각되는 길을 통해 마재 성가정 성지 입구를 만납니다.

 

 

 

입구에서 보는 마재 성지 한옥 성당과 예수상, 그리고 뒤편이 사제관입니다.

 

 

마재 성가정 성지는 의정부교구에서 2006년 순교 사적지인 마재 성지에 전담 사제를 임명하고 성역화에 나서 

2007년 3월 새로 마련한 현 부지에 전통 한옥 양식의 성당과 명례방(만남의 방)을 건립하였습니다.

마재성지 성당 주보 성인은 '도마(토마스)'입니다.

 

 

2008년 9월 28일 이한택 주교의 주례로 마재성지 축복식을 가졌고,

2012년 2월 9일에는 마재성지를 덕소 본당에서 분리해 남양주시 조안면 전체와 와부읍 팔당리 전체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본당으로 신설했습니다.

 

 

 

성당 입구에 모셔진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성당 내부의 제대와 성체 감실과 한복을 입은 예수 십자가.

 

 

제대 밑에는 정약종 순교자 무덤의 흙을 넣었습니다.

 

 

정갈한 모습으로 단장한 전통문양 빗살의 창문.

 

 

 

 

 

명례방(만남의 방), 마재 성가정 성지의 쉼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순교 현양 동산 입구.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아들 정철상 가롤로 상.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그보다 앞서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그의 아들 정하상 바오로와 딸 정정혜 엘리사벳도 바로 이곳 마재에서 태어났습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길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한 예수님의 발 형상.

 

 

약종 동산의 순교 현양비와 모자상.

 

 

 

성가정 동산 입구.

 

 

2017년 축복식을 가진 성가정 동산의 한복 입은 예수상.

 

 

 

성가정 동산 바닥 디딤돌을 맷돌로 조성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죄수의 목에 채웠던 목칼은 순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성가정 동산에 설치된 정약종의 성가정 모습.

 

정약현, 약전, 약종, 약용 등 여기서 태어남 4형제 중 셋째인 약종은 천주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린 순교자로, 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약현의 부인이 이벽 성조의 누이, 정 씨 형제의 누이가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이라는 것을 알면 정씨 형제가 얼마나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779년 주어사 강학회에 참여하는 등 초기 교회 창설에 큰 역할을 한 정약종은 한문을 모르는 신자들을 위해 한글 교리서인 '주교 요지(主敎要旨)'를 펴냈고,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 회장으로서 당시 사제와 교우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펼쳤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갖고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당쟁의 와중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스스로 천주교를 떠났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고,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실학을 집대성했지만 스스로 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 하며 형 정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데 대해 부끄러움을 표시했습니다.

긴 유배 생활중 신심을 되찾은 정약용은 유배에서 돌아온 후 은둔과 묵상, 고행과 기도로 보속의 삶을 살다가 여항덕 파치피코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받고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재 성가정 성지 순례를 마치고 다산 생태 수변공원으로 향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습니다.

실학을 집대성한 5백여 권의 주옥같은 저서는 바로 이 무렵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써진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형 정약종처럼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천수(天壽)를 다하면서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心書)” 등 수많은 명저를 남겼습니다.  제사 문제로 번진 신해박해 때(1791년)만 해도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을묘년(1795년) 포도청 장살 사건이 당쟁으로 발전, 좌천되면서 반대파의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명소(自明疏)를 올립니다.   즉 천주교를 떠났다는 것을 글로써 명백히 밝힌 것입니다.
 
 

다산 문화의 거리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풍경   [자료사진]

경기도 남양주시는 마재 사적지의 중요성을 인식해 1999년부터 다산 문화의 거리를 본격적으로 개발해 여유당 생가를 복원하고 실학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주변 환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였습니다.

의정부교구 또한 2006년 전담 사제를 임명하고 마재 성지에 대한 성역화에 나서 2007년 새로 마련한 부지에 전통 한옥 양식의 도마(토마스) 성당과 명례방 등을 완공하였고, 이어 2008년 9월 28일 마재 성지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2012년 2월 마재 성지 본당 신설과 2014년 정약종과 그의 아들 정철상의 시복으로 가족 모두가 시복 시성 된 것을 계기로 2년간 성가정 성지 조성작업을 실시해 2017년 5월 27일 마재 성가정 성지 선포 및 축복식을 거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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