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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시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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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도종환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은 것은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 자신 이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자신이었음을
        늦게 깨닫는 날이 있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가을 아침도,
        첫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