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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산

'무악재하늘다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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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재 하늘다리]

설 연휴의 마지막날, 긴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지났는지 삼일이 후딱 지나가고 일요일 아침이다.

그동안 너무 잘먹고 잘쉬었는지 몸이 찌뿌둥하고 밖이 궁금해진다.

오전 주일미사를 다녀와서 대충 배낭을 꾸려 무작정 집을 나선다.


전철에서 내려 출구를 나와보니 불광동 사거리다.

불광동 사거리에서 구기터널방향으로 가다가 북한산 둘레길이 만나는 장미공원으로 접어든다.


북한산을 오를때 가끔 이 장미공원을 들머리 혹은 날머리로 왔었지만 봄에 와봐도 장미꽃은 못 본것같다.


장미공원 들머리의 이정표, 이정표의 안내가 장황스럽고 복잡하다.

좀 더 간단하게 정리하면 '북한산 둘레길'의 '옛성길구간'과

'서울 둘레길' '8코스 북한산코스'가 만나며 작게는 '은평둘레길'이 만나고

오늘 가장 중요한것은 '북한산 탕춘대길'로 이어지는 들머리라는 점이다.


'서울둘레길'은 2009년부터 조성하여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길로서

총 거리 157km , 8개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울둘레길 우체통에서 스탬프를 총 28개 모두 찍으면 완주증명서도 발급해 준다.


북한산둘레길 전체구간 지도

북한산 둘레길은 총70Km, 21구간으로 나눠지며 크게는

'북한산구역'과 '도봉산구역'으로 나눠지며 21구간이 그 사이를 지나간다.

참고로 21구간은 예약제로 국립공원 사이트에서 예약하여야 탐방이 가능하다.

 

오늘 날씨는 맑은 하늘은 아니지만 영하권은 아니어서 산행하기에는 적당한 날씨를 보여준다.


탕춘대성길로 오를 수 있는 옛성길로 들어서니 늦은시간 이어서 그런지 한적한 숲길이 나를 반긴다.


국립공원답게 탐방로는 잘 정돈되어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약간 눈에 거슬리는게있다.

바로 탐방로 주변의 소나무들이 우리 고유종이 아닌 외래종 리기다소나무가 가끔 눈에띈다.

천박한 토질에서도 잘자라는 리기다소나무는 우리가 625전쟁후 황패한 산림을 복원 할 목적으로 

뿌리 내리기 까다로운 우리 고유 소나무를 대신해서 심었던 품종이다. 

이제는 우리의 국립공원의 위상에 맞게 리기다소나무를 비롯한 외래종들은 하나씩 제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능선을 올라 조망지점에 오르니 좌측으로 북한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좌측부터 족두리봉, 향로봉, 가운데 비봉, 그리고 다시 우측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승가봉, 나한봉, 문수봉을 거처 보현봉이 정점을 찍고있다.


조망터에서 다시 탐방길을 나서니 벌써 하산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렇게 옛성길구간을 따라올라가니 탕춘대성암문이다.

현재 탕춘대성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암문(巖門)이다.


탕춘대성암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이정표와 안내판.

여기서 죄측으로는 북한산 주능선으로 가는길이고 우측은 북한산둘레길 6구간인 평창마을길로 이어진다.

나는 우측 평창마을길로 가다 계속이어지는 탕춘대성을 따라 인왕산으로 갈 계획이다.


이길은 등산객들이 잘 찾지않는 탐방로여서 그런지 탐방길 정비가 너무 허술한게 눈에 거슬린다.


평창마을길에서 보이는 좌측의 인왕산과 우측의 안산.


탕춘대성길.

탕춘대성은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천(홍재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의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이 산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고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쪽 약 100여m 되는 산봉우리에 연산군의 연회장소인 

탕춘대(蕩春臺)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며, 한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성(西城)이라고도 하였다.

나는 평창마을길을 버리고 탕춘대성길을 따라 상명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탕춘대성을 따라가다보면 세검정으로 하산하는부분의 끊어진 성곽.

여기역시 지날때마다 느끼는것이지만 기왕 사람이 다니다보니 끊어진 성곽이라면 문화재 보존 차원에서

탕춘대성암문처럼 암문이나 아니면 누각모양의 문을 만들면 좋지않을까 생각해본다.


탕춘대성길을 잠시 벗어나 세검정 인왕산들머리로 가기 위해 상명대를 지나온다.


상명대에서 세검정방향으로 내려가며 보이는 인왕산의 모습.


세검정 교차로에서 만나는 장안에서 꽤나 이름있는 '석파랑' 한정식식당을 지난다.


석파랑은 '석파정(石波亭)'의 별체로서 '석파정'은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조선말기의 대표적인 별장이다.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더 잘 알려졌으며 석파(石坡)는 정자의 앞산이 바위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흥선대원군의 아호인 석파 역시 석파정에서 나왔다.


세검정 교차료의 음악분수대에 세워진 조형물을 감상하며 인왕산 들머리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인왕산 탐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들머리다.


인왕산 들머리에서 보는 홍지문,

홍지문은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으나,

숙종이 친필로 '홍지문(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부터 이것이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홍지문은 숙종 41년(1715)에 건축되어 1921년까지 탕춘대성문으로 그 역할을 하였으나

1921년 홍수로 붕괴되어 50여년간 방치되어 오다가 1977년 탕춘대성과 함께 복원하였다.

지금의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것이다.


가파른 오름길의 인왕산 탕춘대성길,

이 성곽이 이어져서 인왕산을 거쳐 자하문(창의문)고개를 넘어 북악산으로 이어진다.


오름길에서 보는인왕산 정상부, 대부분 바위덩이로 이루어진 암산(岩山)이다.


그리고 이 산아래 홍지문터널과 이어지는 내부순환도로위에 시원스럽게 달리는 차량과 주변이 내려다 보인다.


오름길 우측으로는  북악산(342m)과 하얀실선의 성곽길이 눈에 들어온다.


오름길은 계속 바윗길로 이어지고,


그 바위에 올라 뒤를 바라보니 역시 북한산 주능선이 족두리봉부터 보현봉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다시 소나무들이 멋스럽게 서있는 숲길을 지니니...


기차바위가 어린아이들 기차놀이때 새끼줄로 만든 기차처럼 길게 늘어 서있다.


기차바위에서 보는 북악산과 종로방면의 모습.


기차바위에서 보는 북악산과 멀리 북한산의 모습.


북한산을 배경으로 기차바위 하단부를 담아봤다.


기차바위 상부에서 보는 인왕산 정상과 그 넘어 안산의 모습.


주변 경관에 정신팔려 오르다보니 정상이다.

이곳 인왕산에서는 정상뿐 아니라 어느곳에서도 서울 중심시가지가 눈에 잘 들어온다.


정상에서보는 기차바위 상부와 뒤로 보이는 북한산의 주능선과 보현봉.


그 광활한 북한산과 북악산과 인왕산으로 힘차게 뻗어오른 탕춘대성곽모습을 더 넓게 파노라마로 잡아봤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서울 시내를 배경으로 인증사진도 한 장.


정상에서 내리뽇은 성곽과 함께 먼곳까지의 배경을 잡아봤다.

좌측 남산과 우측으로 청계산, 관악산, 삼성산이 뿌연 서울하늘을 배경으로 흐리게 보인다.


정상을 내려와 범바위에서 바라보는 정상부와 성곽의모습.

성곽의 모습이 탕춘대성암문 근처에서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있다.


범바위와 정상부 모습.


범바위를 내려오며 보이는 성곽의 모습.

저 성곽길을 따라 하산하면 자하문 터널을넘어 효자동방향으로 하산하게된다.


나는 성곽을 따라 하산하다 성곽중간의 무악재로 갈 수있는 출입구로 향한다.


이곳 주변은 서울 주변에서 기(氣)가 세기로 유명한곳 이어서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기가 센만큼 산세가 험하고 길도 나빳는데 오랫만에 와보니 그동안 테크로 길을 편하게 만들어놨다.


예사롭지 않게 생긴 바위들에는 적잖이 낙서도 보이고,


그 예사롭지 않은 바위들을 넘고 돌아 선바위로 향한다.


두개의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선바위의 뒷모습이다.

선바위는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있다.


선바위의 형상이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禪(선)’자를 따서 선바위[禪巖]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 또는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도 있다.

또한 자식 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기자암(祈子岩)이라고도 불리었다.

이래저래 지금은 선바위의 기를받아 자기의 소원을 이루고자하는 무속신앙인들이 많이 찾는곳이 되었다.


선바위 주변의 또 다른 무속인들의 굿터.


선바위 주변 큰바위아래에서 소원을 빌고있는 무속인의 모습.

이런 무속인들의 모습은 예사롭지않게 생긴 바위주변에서 많이 볼 수있다.


나도 오늘 인왕산을 다녀가니 내 심신에 기가 많이 담겨있기를 은근히바라며

수락의 배낭바위 닮은 모습의 바위가있는 인왕산 정산부를 바라본다.


잘 정리된 산길을 내려오다보니 눈에 띄는 못보던 이정표가 보인다.

바로 '무악재하늘다리'다.


안내표지를 보고 내려오니 아취형으로 예쁘게 만들어놓은 다리가 나를 반긴다.

인왕산에서 안산으로 넘어가려면 가파른 무악재를 오르락 내리락 힘들게 30여분 이상 고생해야했는데, 반갑다.


이 '무악재하늘다리'는 사람뿐 아니라 야생동물의 이동을 위해 생태교형식으로

폭 11.7m, 길이 80m 규모로 만들었으며  만 1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2017년 12월 18잉 개통했단다.


무악재하늘다리덕에 계획에 없던 안산(무악산)까지 오르기로하고 첫 만남의 설래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넌다.


하늘다리를 건너니 아담한 정자가 하늘다리와 인왕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하고있다.


정면으로는 안산의 봉수대가 험상궂은 바위위에 버티고있는 모습이 보인다.


안산 : 안산(鞍山)의 '안(鞍)'은 말안장이란 뜻이다.

'鞍'이란 글자는 두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가죽 혁(革)' 또는 '고칠 혁'과 '편안할 안(安)'이다.

도성 서쪽 산인 안산은 서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아야 편안하다고 해서 안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안산은 무악산(毋岳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악이라는 명칭은 한양 천도를 위해 지금의 청와대 뒤에 있는 북악산, 인왕산 등과 함께

도읍의 주산을 다투는 과정에서 태조 이성계가 안산을 무악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을 내려다보니 무악동과 홍재동의 아파트촌이 인왕산아래 자리한 모습이 보인다.


안산을 오르며 남산을 배경으로 바라본 시내모습.


안산 봉수대 오르기 전의 헬리포터와 통신시설.

저기 통신시설이 있는곳이 실질적인 안산의 정상이다.


안산 봉수대.

태조 때부터 안산에는 봉수대(烽燧臺)를 설치하여 매일 저녁 봉홧불을 올리게 했다.

무사하면 봉홧불 하나를 올리고 외적이 나타나면 두 개, 국경에 가까이 오면 세 개,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싸움이 붙으면 다섯 개를 올리도록 했다.

따라서 평화 시에는 늘 봉홧불 하나가 정상에서 타올랐다.


원래 이 봉수대는 각각 동서 두 봉우리에 설치돼 있었는데

동쪽 봉우리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지 쪽에서 전해오는 신호를 남산 제3봉수대로,

서쪽 봉우리에서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바다 쪽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 남산 제4봉수대로 보내는 것이다.


봉수대를 내려와 무악정으로 향한다.

이곳 안산에는 지금 걷고있는 등산로 말고 '자락길'이 둘레길처럼 조성되어있다.


2013년 11월에 개통된 안산 자락길은 총연장 7km로,

계속 거닐다 보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고 보행약자도 안산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순환형 무장애 숲길’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무장애 숲길 중 오르내리는 ‘편도형’이 아닌 ‘순환형’으로 완공된 숲길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주위를 조망하며 휴식을 취할 수있는 팔각 정자로 지어진 무악정(母岳亭)은 안산의 또 다른 명소다.



안산 무악정에서 연세대 방향으로 하산길을잡는다.


이 길은 안산의 여러 길 중에 소나무숲이 특히 아름다워 걷기좋은 길이다.


소나무숲길을 벗어나니 연세대 뒷편 쉼터 공간이 나온다.

이곳도 편안하게 쉬며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연세대 설립자 H,G 언더우드 동상과 연세대 본관 교정모습,


연세대의 교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의미를 곱씹어보며 중앙광장을 빠져나온다.


오늘 산행은 여기까지.

생각지않게 조금 긴 산길을 걸었지만 음력 정초를 맞이하여 기가 센 인왕산과

뜻하지 않은 선물같은 무악재 하늘다리를 설래는 마음으로 건널 수 있어서

기분좋은 산행이었다. ^^**^^




Moments Of Love - Band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