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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마음의여행 - 나가사키 성지순례 4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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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도 하비에르 기념성당.]

       히라도의 상징인 히라도 성당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히라도 선교를 기념해 1971년에 건립한 성당이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당은 주첨탑을 작은 첨탑들이 둘러싸고 있는 

       독일식 고딕양식 건축물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고딕양식으로는 보기 드문 비대칭 건물로 정면에서 보면 왼쪽에만 팔각 탑이 보여 불가사의한 매력을 준다.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 4일 차,

나가사키 성지순례 마지막날 여정을 조금은 특별하다기보다는 특이한 곳에서 시작한다.

히라도 하비에르 성인 기념성당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벗꽃이 핀 계단길 옆에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이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일본 전역에도 보기힘든 한 지역에 불교사원과 가톨릭교회가 같이 공존하는 지역이란다.

       히라도 성당으로 가려면 일본식 나무집이 줄지어 있는 마을길을 지나 돌담길을 올라야 하는데

       언덕 위에 높은 고딕식 성당이 보이고 그 아래로 3개의 절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게 보인다.

       코우묘우지(光明寺)와 즈이운지(瑞雲寺)의 절과 하늘색 고딕식 성당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이좋게 친구처럼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이 풍경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하비에르성당을 뒤로 하고 3개의 절로 내려가는 돌담길은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 될 정도로 특별하다.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

좁은 그리고 조금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길옆 불교사원 지붕위로 성당 종탑이 미끈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고있다.

아래는 즈이운지(瑞雲寺)라는 사찰이고 위는 히라도 하비에르 성당이다.



좁은 언덕길을 올라오며 뒤돌아보니 우리의 불교사원과는 다른모습의 사원이 눈길을 끌고

보이는 풍경은 우리의 시골 종가댁 저택을 연상시키는 풍경이 주변숲과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일본식 사원과 목조건물들이 들어서있는 길에는 정원도 잘 조성 되어있어 참 운치있는 길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면 하루쯤 묵으려 산책도 하고 머리도 정화시키고 싶은 풍경이다.



오르는 길목이 조금은 가파르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산책하기좋은 길을 벗어나니

연한 푸른색이 도는 고딕양식의 성당 뒷편으로 다다른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은

동양의 사도, 위대한 성자로서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 하비에르 신부의 1550년

히라도 첫 방문을 비롯하여 모두 세 차례의 히라도 방문과 그의 선교를 기념하기 위하여 1971년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이 이곳에 온지 400주년을 기념해 다시 건립한 성당이다.



하비에르 기념성당에 들어서니 좌측으로 십자가를 들고있는 하비에르 조각상이 서 있고

원형 기둥에 아취 형태의 굴곡이 예쁜 성당내부가 정갈하게 정돈 되어 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 내부의 제대 모습을 좀 더 크게 담아봤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다보니 내부 안쪽은 미사시간 외에는 개방을 안하는 듯 보였다.



성당 정면 우측에는 예수 그리스도상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두팔벌려 우리 순례객 들을 반기고 있다.



 성당 종탑이 보이는 아랫마당에는  루루드의 성모상을 모셔놓은 성모동산이 아름답게 꾸며져있다.



성모동산 앞에서 오늘까지 3박 4일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무탈하게 마칠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오늘밤 늦게 서울로 가는 귀가 길도 무탈하게 잘 도착 할 수 있도록 기도해본다.



아름다운 하비에르 기념성당과 성모동산을 다시 한 번 마음에 담아본다.



평호(히라도)순교자현창위령지비(平戶殉敎者顯彰慰靈之碑)

하비에르성당 한켠에는 일본 금교령으로 인한 박해시대에  순교자를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있다.



그리고 위령비 옆에 자리 하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동상.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4월 7일생으로 스페인 바스크지방에서 태어났다.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기울어진 가세로 출세를 꿈꾸고 있던 중에 이냐시오 데 로욜라를 만나서 예수회를 창설하고 선교사가 된다.

      ‘아시아의 예루살렘’이라는 인도의 고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말라카(현재의 싱가포르부근)에서 일본인 야지로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으로 하비에르는 일본 으로 선교를 가게 되는데 1549년 가고시마에 도착을 하고 1550년 6월 스페인 상선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일행은 그들의 근거지를 히라도로 옮겨 선교활동을 하였다.



하비에르 기념성당을 둘러보고 버스가 있는 내리막 길에서 보이는 일본식 묘지와 히라도항.

대부분  돌탑으로 제작되어 납골당 역활을 하는 묘지들은 이곳 사원 주변은 물론이고

주택가 주변에서도 어우러져 쉽게 볼 수 있는게 우리 눈에는 신기하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풀경'을 감상하며 호젓한 언덕길을 내려오니

히라도 항구가 보이고 항구 건너편 으로는 히라도 성도 보인다.

히라도항은 일본에서도 남서쪽 끝에 위치하다보니 서양인들이 접근하기 가장 편한 지역들 중에 하나여서

서방풍물이 들어오고 하비에르 신부님도 이 항구를 통해 도착하여 히라도에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우리는 히라도 하비에르 기념성당을 뒤로하고 타비라 성당으로 향한다.



'타비라' 성당 주차장에 도착하니 타비라 성당과 함께 일본의 천주교 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 묘지는 천주교 묘지로써 일본에서 보기드문 천주교 묘지로서 그 구성이나 모습이

그간 보아왔던 일반 불교식 묘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묘지를 둘러보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있는 우리 순례자들,

이곳 신자들의 묘비를 살펴보면 소토메-고토-쿠로시마-히라도에 이르는 신자들의 이주 여정을 유추할 수 있다.

타비라본당 신자들의 묘에는 소토메, 고토, 쿠로시마 등에서 볼 수 있는 집성촌의 성씨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묘지는 타비라 성당과도 거부감 없이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앙을 위해 고단하게,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살다 여기 뭍혀있을 고인들을 생각하며 잠시 기도를 드린다.



'타비라(田平)' 성당.

    히라도 해안가 언덕에 자리잡은 타비라 성당역사는 메이지(明治) 19년(1886년)에 라게 신부가 구로시마(黑島)에서,

     드로 신부가 데즈에서 숨어지내던 가톨릭 신자 몇가족을 타비라 요코타데로 이주시키면서 시작됐다.
   나카타 도우키치 신부가 1914년 주임으로 부임한 후 1916년 성당 건축 공사를 착공,

     1918년 5월 14일 완공해 일본 26위 순교자에게 헌당했다.

    

      타비라 성당 건립 공사는 쉽지 않았다.

     프랑스인 독지가에게서 기부를 받아 착공했지만 자금부족으로 나카타 신부와 신자들이 노력 봉사를 해야만 했다.

     석회를 구입할 돈이 없어 히라도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조개 껍데기를 구워 갈아 석회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후기 벽돌조 양식의 타비라 성당은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데쓰카와 요스케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종탑에는 1931년 프랑스에서 도입한 '천사의 종'이 설치돼 있으며 성당 좌우측 창에는 성경 내용을 주제로 한 색유리화가 장식돼 있다.



성당 입구 정면에 자리하고 있는 루루드 성모상.



타비라성당 내부와 제대모습.



이곳 타비라성당에서 나가사키순례 4일 차 미사를 드리며 나가사키 성지순례

4일간의 여정을 거치며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 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미사가 끝나고 둘러보는 성당내부는 건축 방식이나 아름답게 꾸며진 제대는 물론이고

양쪽 창문에는 모두 성서의 한 장면씩을 스테인글라스로 장식하여 고풍스럽고 성스러운 모습을 더했다.



 

그중에 사진에 담기편한곳의 스테인 글라스를 담아보앗다.

위 좌측에 나자렛 성가정모습, 우측에 성령으로 인한 예수의 잉태를 알리는 천사.

아래 좌측에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우측은 가나의 기적 모습을 담고있다.



타비라 성당건설 50주년 기념비와 2018년, 헌당 100주년 기념비.

(헌당 [獻堂] : 성당 건물을 새로 지어서 하느님에게 바침)



타비라(田平)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걸작의 타비라성당을 후면에서 담아봤다.



'야이자사적공원' (焼罪史跡公園) 전경.

타비라성당을 떠나 나가사키 성지순례 4일의 마지막 순례지 '야이자사적공원'을 찾앗다.



이곳은 화형으로 순교한 '카미로 콘스탄치오' 신부의 순교정신을 기려 '야이자사적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카미로 신부는 금교령으로 마카오로 추방되어 1621년에 일본으로 돌아와 사가에서 활동하다가  다음 해에 히라도에서 잡히고 만다. 
       그리고 히라도시 야이자언덕에 있는 야이자 공원에서 화형으로 순교한 성인이다.



카미로 콘스탄치오 신부 순교기념비가 있는 야이자 공원을 순례하는 것으로 나흘간의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마감한다.

 1597년 니시자카 언덕에서 26성인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자 이 모습을 보고 오히려 신자들의 신앙심이 굳건해져

이후에는 더 심한 형벌인 화형이나 참수형을 했다고 한다.



     

      2008년 순교복자 188위를 탄생시킨 일본 나가사키대교구는 시복 1주년을 기념해 나가사키현과 함께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로 등록한 29개 성당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동양의 로마'에서 '순교의 땅'으로 이미지를 새롭게 부각시켜 세계의 순례자들을 유치하려는 나가사키대교구의 노력이 대단하다.




       일본에 그리스도 복음이 전해진 것은 1549년 예수회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 신부에 의해서이다.
    일본 큐슈(九州) 남부 가고시마에서 복음을 선포한 하비에르는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名)와 불승들의 박해가 있자 

      1550년 9월 나가사키현 남서해 지역에 위치한 히라도(平戶)로 옮겨 복음을 선포했다. 당시 히라도는 국제 교류 도시였다.

      히라도는 16세기부터 유럽 문물을 많이 받아들여 아시아와 유럽이 혼연일체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또 히라도는 임진왜란 당시 많은 병사를 파견했고,

      이곳 다이묘 마츠우라는 귀국 때 조선 도공 100여 명을 끌고와 '히라도야키'라는 도자기 문화를 열기도 했다.
    하비에르 신부는 히라도에서 약 한 달간 머무는 동안 다이묘 마츠우라 타카노부(1529~1599)의 가신들과

      키무라 집안 사람 100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들 후손들 중 키무라 세바스티아노는 일본인 최초의 예수회 신부가 됐다.

      임진왜란 때 끌려와 세례를 받은 조선인 코라이 안토니오가 히라도에서 순교했다.
    지금도 히라도는 동서 문화의 이국적 향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울러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잇따른 가톨릭 금교령에 의해 300여년 동안 박해를 당하면서

      순교자들과 신분을 감춘 채 숨어 살았던 가톨릭 신자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나가시키 성지순례 첫 쨋날, 우에마츠 성당에서 첫 여정의 설레임을 안고...



나가시키 성지순례 둘 쨋날, 성모기사회 성모동산앞에서 루르드 성모님의 기적을 기리며...



나가사키 성지순례 셋 쨋날, 모진 박해에도 천주 믿음을 버리지 않은 26 순교성인들의 뜻과 넋을 기리며...



나가사키 성지순례 넷 쨋날,

어려운 여건 에서도 선교와 사랑과 희생을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기리며...

나가사키 성지순례 3박 4일의 여정, 마음의여행을 마무리한다. ^^**^^




평화의기도 : 볼쇼이 합창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