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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북도

마이산 (馬耳山 68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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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첫 주에, 이제는 좀 어떨까? 괜찮겠지? 싶어서

걸었던 덕유산길(평상시에는 기본 프로그램 이었는데... ㅋ) 에서 

단단히 탈이나서 거의 두 주를 목발은 안짚어도 절룩거리며 움직여야 했다.

한결 더위가 누구러진 8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거의 한 달만에 마이산 산행길을 걸어본다.

비교적 거리가 짧아서 만만해 보이는 (만만한 산은 절대 없다는걸 알면서.....) 마이산길에

다리는 테이프로 도배 하고 붓기 잡아주는 압박스타킹으로 보강 하고서 길을 나선다.  

 

 

 

 

 

     마이산 (馬耳山) :

     진안고원에 있는 2개의 암봉, 동봉을 숫마이봉(680m), 서봉을 암마이봉(687.4m)이라고도 한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부터는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별칭이 많은데,

     봄에는 안개 속의 두 봉우리가 쌍돛배를 닮아서 돛대봉, 여름에는 숲 속에서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 가운데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좀 괜찮다 싶으면 붙혀지는 이름이나 별명도 유명세에 비례해서 많은 것 같다.

 

 

 

 

 

        

            산행일 : 2019년 8월 31일 (토)

            산행길 : 들머리 - 남부주차장,      날머리 - 남부주차장.  (원점회귀)

                     * 남부주차장 - 고금당 갈림길 매표소 - 고금당 - 비룡대 - 탑영재 갈림길  - 봉두봉 -암마이봉 입구 - 암마이봉 -

                        암마이봉 입구 - 천왕문 - 운수사 - 탑사 - 탑영제 - 금당사 - 남부주차장.

            산행거리 : 약 8.5Km.

 

 

 

 

추석 명절이 코 앞 이어서 인지 생각보다 많이 밀리는 고속도로를 헤쳐나와 11시가 훌쩍 넘어 마아산 산행을 시작한다.

매표소를 지나 고금당 오르는 길목에는 아마도 달마승을 닮은 석조각과 4월 초파일이 한참 지난 깃발이 산객을 맞이한다.

 

 

 

 

고금당 오름길에는 참나무과 수목들이 시원한 숲을 이루고 있다.

 

 

 

고금당 갈림길의 이정표.

약 200m거리에 있는 고금당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와 우측 비룡대 방향으로 갈 예정이다.

 

 

 

고금당은 옛 금당사 자리로, 조선건국에 일조하신 무학대사의 스승이신 나옹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고금당 마지막 오르는 길이 불편하여 고금당 바로 아래에서 대충 둘러 보고 발길을 돌린다.

 

 

 

고금당을 둘러보고 비룡대로 향하는길목에 마치 불량난 레미콘 덩어리같은 큰 바위가 눈을 끈다.

 

 

 

시원한 참나무 숲길에서 이정표를 만나고.

 

 

 

올라온 길도 가파랏지만 난간까지 만들어 놓은 가파른 돌길을 오른다.

 

 

 

난간에 의지하며 조망터에 오르니 숲길이 벗어지며 하늘이 열리고 시원한 산들바람과 함께 넓은 조망이 펼처진다.

 

 

 

우측 아래로는 조금전 지나온 고금당의 지붕이 금빛을 발산하며 존재를 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룡대 오르는 철계단.

 

 

 

철계단을 오르며 아래를 바라보니 조금전 쉬었던 조망터와 함께 더 넓은 시야가 보는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든다.

 

 

 

철계단과 함께 곧바로 이어지는 비룡대.  마이산의 대표급 전망대다.

 

 

 

비룡대에 올라서니 마이봉과 주변의 모습이 고스란히 하나의 파노라마가 되어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진안읍 방향의 모습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넓게 펼쳐진다.

 

 

 

비룡대에서 봉두봉을 향하는길에 서까래로 받쳐놓은 또 큰 바위 하나를 만난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산길은 적당한 그늘과 함께 녹음의 향기를 맛본다.

 

 

 

금당사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만났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봉두봉이 1.9Km인데 주차장까지 2.4Km란다.  어느쪽 관광단지 주차장을 말하는건지...

 

 

 

계속 이어지는 오름길과 내리막길이 은근히 산꾼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기사 산길을 탓하기 보다 내 발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힘든건 당연한 일.

 

 

 

울창하게 자리잡은 침옆수인 소나무 숲길을 지나며 나름대로 숲의 생태변화를 엿본다.

 

 

 

소나무 숲길을 벗어나니 활옆수인 참나무과 나무들이 드센 자리싸움을 하며 소나무 숲을 엿보고 있는 모양세다.

 

 

 

기분좋게 울창한 소나무숲과 참나무숲을 지나다 또 커다란 바위를 만난다.

아래쪽에서 올려다 보니 입을 떡 벌려 벌래 잡아먹고 있는 듯한 영락없는 떡두꺼비 모습이다.

 

 

 

탑영제 갈림길을 지나고,

 

 

 

삿갓봉 갈림길에서 잠시 쉬었다가 봉두봉으로 간다.

약 500m정도 거리에 있는 삿갓봉에 오르면 두 귀가 뽕끗한 제대로된 마이봉을 볼 수 있는 조망점이 있는데 못가서 아쉽다.

 

 

 

 

삿갓봉 갈림길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장승 한 쌍과 솟대가 멋진 작품으로 자리잡고 길손의 시선을 끈다.

 

 

 

갈림길에서 한참을 가니 제법 편히 쉴 수 있는 밴치까지 만들어 놓은 제2쉼터를 만난다.  그럼 제1쉼터는...?

 

 

 

쉼터에서 바라보니 우측으로는 멀리 좌측 산중턱에 고금당과 우측 나봉암위에 자리잡은 비룡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진행 방향으로는 육중한 암마이봉이 맨살을 들어내 보이고 있다.

 

 

 

봉두봉을 지나 탑사 갈림길의 이정표를 만나고...

 

 

 

바로 눈 앞에는 조금 전 보다 더 거대한 모습의 암마이봉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길은 굵은 자갈밭길도 올라야 하고,

 

 

 

암마이봉 바로 아래서 부터는 암마이봉 입구로 가기위해 암마이봉 좌측길을 따라 굽이 돌아야 한다.

 

 

 

암마이봉 아래에는 산악회 리본으로 장식된 서까래가 즐비하고,

 

 

 

난간이 쳐저 있는 벼랑 옆길을 걸으며 주변 경관을 즐기면서,

 

 

 

간간이 우는 매미소리가 반가운 참나무가 우거진 그늘 사이의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관리 초소가 있는 암마이봉 입구에 다다른다.

 

 

 

여기 암마이봉 입구부터는 계속 계단길로 이어지며 탑사로 가기위해 다시 내려와야 된다.

거리는 450m에 불과하지만 가파른 암마이봉을 올랐다 내려오려면 만만한 거리는 아닌듯 하다.

 

 

 

암마이봉 오르는길 중간부터는 계단 폭이 협소한 관계로 오름길과 내림길이 분리되어 있다.

 

 

 

계단이 없는 오르막엔 마치 시골 자갈길을 연상시키는 가파른 바윗길이 이어지고,

 

 

 

오르며 짭짭이 보여주는 숫마이봉이 어딘지 모르게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모습이다.

저 숫마이봉을 보면서 북한산 백운대 옆의 인수봉을 떠올렸다면 내가 너무 감상적일까?

 

 

 

그리고 다시 계단길을 오르니 포토죤 까지 마련되어 있는 전망점을 만난다.

 

 

 

마이봉은 얼핏 보기에 건축 현장에서 불량난 레미콘을 아무렇게나 쏟아버린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암마이봉 정상에서 발견된 민물고기 쏘가리와 다슬기 등의 화석이 이곳이 호수였던 사실을 증명하고 있단다.

지질학적으로 약 1억여 년 전 호수였던 진안 분지에 큰 홍수가 일며 근방에서 자갈과 모래 진흙이 밀려와 퇴적되었는데

약 6~7천만 년 전 지각 변동 시 서서히 융기되어 지금의 역암(수성암)이 되었으며 두께는 약 2,000m 정도로 알려져 있단다.

 

 

 

여기 또 하나의 익숙한 모습이 나를 기다린다.

오름길이 끝나고 관목사이로 둥근모습의 하늘을 보여주면 십중팔구는 정상이었다.

 

 

 

계단오름을 끝내고 관목사이의 둥근 하늘이 보이는곳에 다다르니 암마이봉 정상이다.

 

 

 

암마이봉에서 인증사진 한 장 박아 본다.

산에 다녀온 인증사진 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나의 모습이 스스로 궁금해서 가끔 박아본다.

얼굴은 그 사람의 80%이상을 보여주는 것 이라는데 혹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제 7학년에 접어들면서 세속에 찌들어 일그러진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 조심스럽다.

 

 

 

암마이봉 정상 주변에는 아담한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어서 주변 경관을 감상해본다.

 

 

 

아래로는 마이산 생태수변공원인 사양제와 진안읍 방향으로 20번국도 새만금포항고속도로도 멀리 조망된다.

 

 

 

반대편 조망터에서는 오늘 산행기점인 남부주차장 일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왼쪽 아래 저수지가 탑영제이고 중앙이 주차장이 있는 상가지역,  그리고

약간 우측 산등성에 고금당과 우측 에 약간 헐벗은 바위를 들어내 놓고있는 나봉암의 비룡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 보이는 은천마을의 고즈넉한 모습이 보는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듯 하다.

 

 

 

암마이봉 정상에서 멋진 맑은 공기와 풍경으로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다시 관리초소로 내려온다.

 

 

 

암마이산 입구에서 내려와 천왕문 쉼터 갈림길에 도착한다.

안내판에는 마이산과 마이산 8경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있다.

 

 

 

그리고 쉼터 한 가운데 자리잡은 예쁘게 만들어놓은 위로 솓는 샘이 눈길을 끈다.

 

 

 

그 샘은 양쪽 방향으로 흘러 한쪽은 '섬진강의 시작'을 알리고.

 

 

 

바른 반대편에는 '금강의 시작'을 알리며 한 샘에서 양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모양세가 지금은 신기한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예전에는 호남의 물길이 사방으로 흩어진다고 해서

산발사하(散髮四下)[머리가 풀어지고 물길이 사방으로 흩어진 모양]의 좋지 못한 형세로 보는 풍수관도 있었다.

 

 

 

천왕문 쉼터에서 탑사로 가는 계단을 내려간다.

그 계단에는 한계단 한계단 마다 숫자가 1 부터 인식 되어 있어서 내려가며 그 수를 해아려본다.

 

 

 

목조계단을 한참을 내려오니 그 끝의 숫자는 324를 나타내고 있다.

 

 

 

그 계단을 끝으로 좌로 몸을 트니 운수사가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잡고있다.

 

 

 

숫마이산 아래 자리잡은 은수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곳이다.

은수사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사찰에서 물을 마시고 물이 은처럼 맑다고 해서 은수라 이름을 지었다 한다.

법당 현판이 일반 사찰의 대웅전과 달리 '대적광전' 이라는 금색바탕 현판이 눈길을 끈다.

 

 

 

대적광전의 옆모습을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두 봉과 함께 담아봤다.

 

 

 

대적광전 아래에는 무량광전이 역시 금색 바탕의 현판을 가지고 있고,

그 우측으로는 불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좌상의 인물상이 보인다.

 

 

 

오른손에 몽금척을 들고 좌대에 앉아 있는 태조 이성계상이다.

태조가 왕이 되기 전에 금척(金尺)을 하사 받는 꿈을 꾸었는데,
황산대첩 후 귀경길에 마이산에 들러 보니 이곳이 꿈에 본 곳과 흡사했다는 것이다.
금척은 금으로 만든 자로 왕위의 신표이며, 자는 사물을 재는 자이기에 통치를 상징한단다.

 

 

이성계의 이야기가 함께하는 은수사를 나오며 다시한번 마이봉과 함께 담아본다.

 

 

 

은수사에서 계단길을 굽이돌아 내려와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를 만난다.

 

 

 

탑사의 돌탑은 80여개로 아무리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돌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탑의 구성을 보면 자연석을 원뿔형으로 쌓아 올린 탑이 5기, 넓적한 자연석을 포개 쌓은 외줄 탑이 80기에 이른다.

그중 맨 위의 원뿔탑 2기의 이름이 '천지탑'이고 각 탑마다 이름이 붙혀있단다.

 

 

 

마이산 탑은 불탑(佛塔)도 아니고, 서낭당으로부터 유래된 탑도 아니며 비보(裨補)탑으로 보는경우가 많다.

비보(裨補)탑이란 마이산을 산발사하(散髮四下)로 볼때 국토를 진호(鎭護)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 많은 탑들이 어떤 성격의 탑 인가를 두고 학자들간에 갑을 논쟁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탑들의 기묘한 모습과 궁금증을 뒤로하고 탑사를 나와 탑영제로 향한다.

 

 

 

마이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남서로 흘러 저수지를 이룬곳이 탑영제다.

탑영제라는 이름은 물이 잔잔할때 마이산과 탑사가 투영된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것 같다.

 

 

 

 

나도 그마이산 투영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는데 실력이 없어 포기했다.

탑영제 수변공원은 주변으로 물위에 뜨는 부유데크를 설치하여 마치 물 위를 걸으며 마이산 주변을 조망할 수 있게 조성해 놨다.

 

 

 

제법 긴 탑영제 수변공원을 주변을 돌아 금당사 극락보전 앞에 도착한다.

금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로 마이산 도립공원내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금당사 한켠에는 금색 옷을입은 미륵상이 서있고.

 

 

 

금당사  마당에는 고려 후기에 세운것으로 전해지는 5층석탑이 기단 중석이 보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이산 금당사를 둘러보며 오늘 마이산 산행을 마무리한다.

아직은 몸 상태가 완전치 못하여 나 자신에게도 불만스럽지만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와 실록이 우거진 자연속에서 하루를 보냈다는게 여간 다행스럽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이산 산행을 끝내고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남부주차장에서 좀 떨어져 있는 이산묘 앞을 지나며 

 '호남의병창의동맹단결성지'글씨 와 '대통령 김대중'이 적혀 있는 비석을 발견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호남의병창의동맹'에 '단결성지'를 더하여 세운 비석인것 같다.

 

오늘 이산묘는 다녀오지 못했지만 이산묘에 대해서 알아본다.

 
'이산묘'에는 단군을 위시하여 태조, 태종, 고종의 어진을 모신을 회덕전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조선건국 후 충신과 유림 40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을사늑약이후 충신과 열사 34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산묘’ 현판은 1949년 원장으로 선출된 이시영부통령의 글씨이다.
‘대한광복기념비’ 휘호는 이승만대통령의 글씨이며 후면의 비문은 함태영부통령이 지은 글이다.
이산묘 건너편 계곡 암벽에 새겨놓은 ‘청구일월 대한건곤(靑丘日月大韓乾坤)’ 은 백범 김구의 글씨이다.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
 
옛 부터 많은 이 들이 본인의 흔적을 남기기를 좋아 했던것 같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였던 아니면 타인의 권유였던.....

많은 것을 보고 즐기고 느끼며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하루였다.  ^^**^^

 

 

 

 

 

 

 

 

 

Rancho Deluxe / Tol & T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