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산 성지 :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 (軍門梟首)의 형을 받고 순교한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라우렌시오 앵베르 범(犯)주교와 성 베드로 모방 나(羅)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鄭)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이들은 1836년 이래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던 이국적인 외모를 감추기 위해 상복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며, 밤낮으로 험한 산길을 걸으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 복음전파에 힘썼다.
아울러 모방 신부는 당시 소년이었던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 최방제 프란치스코 등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내 최초의 조선인 신부를 양성함으로써 조선 천주교회에 큰 업적을 세웠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세 성직자는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에 나아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형으로 1839년 9월 21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아들의 유해는 20여일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후에 교우들의 노력으로 노고산(지금의 서강대 뒷산)에 안장되었고, 1843년에 박 바오로 등에의해 다시 발굴되어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안장되었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인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세 서직자가 시성(諡聖)의 영광에 오르자 이를 기념하여 서울대교구에서 묘지 부근의 땅 1만 6천여 평을 매입, 1989년 명동성당에서 성인 유해를 일부 옮겨와 안치하고 축성식을 가졌다.
솟대 :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의 신앙대상물.
솟대는 마을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다. 홀로 세워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장승·선돌·탑·신목 등과 함께 세우기도 한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라고 불리며 일부지방에서는 까마귀·기러기·갈매기·따오기·까치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솟대신앙은 물을 상징하는 물새들을 장대 위에 세움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보장하는 마을신의 하나로 삼았다.
풍수지리설과 과거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널리 퍼짐에 따라서 행주형(行舟形) 솟대에 돛대로서 세우는 짐대와 급제를 기원하는 화주대(華柱臺)로 분화·발전되었다.
솟대의 기원은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분포는 만주·몽골·시베리아·일본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이다. 이는 솟대가 북아시아 샤머니즘 문화권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신앙물임을 알려준다.
솟대는 형태를 기준으로 솟대·짐대·돛대·설대·새대·장승대 등으로 구분되고, 기능을 기준으로 수살·추악대·진목·소줏대·표줏대·효대 등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동제와 관련해서는 당산·진또배기·별신대·성황대, 세워진 위치에 따라서는 거릿대·갯대, 의인화를 기준으로 해서는 거릿대장군님·대장군님·당산할머니·당산할아버지·진또배기서낭님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모두 신간(信竿)으로서의 기능과 성격을 지닌다. (다음 백과사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