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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계룡산[鷄龍山 84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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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鷄龍山]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 논산시·공주시 경계에 있는 산.

높이 845m. 차령산맥 서남부에 솟아 있으며, 금강에 의한 침식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도덕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2줄기, 서쪽으로 1줄기를 뻗치고 있어, 전체의 모습이 마치 닭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했다.

산세가 험하며, 노성천·구곡천·갑천 등이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예로부터 신라 5악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제사를 지내왔고, 조선시대에는 중악단(中嶽壇)을 세워 산신제를 지낼 만큼 신령스러운산이었으며,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이다.

 

 

 

 산행개요:

오늘 시산제를겸한 토요정기산행으로 이곳 계룡산을 택했다.

예로부터 나라에서 산신제를 올렸던 곳이니 이 신원사가 계룡산에서도 가장 정기가 빼어난 길지라 할 것이다.
우리 서울산행클럽도 이곳 계룡산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무사히 산행을 마침에 감사하고, 올 한 해도 회원간의 회합과 사랑과 건강을 빌며 무탈하고 즐겁고 행복한 산행을 기원하기 위해 찾았다.

 

산행일 : 2013년 2월 23일 (토)

산행길 : 들머리- 신원사 탐방지원센터,    날머리 - 동학사 탐방지원센터.

        신원사주차장~신원사~(시산제)~고왕암~연천봉고개~연천봉~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동학사주차장

산행거리 : 약 10Km

산행시간 : 6시간 (시산제, 휴식포함)

산행인원 : 34명 (서울산행클럽)

 

 

 신원사지구 계룡산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바라보이는 모습.

중앙으로 연천봉이 그리고 우측 멀리로 계룡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하얀 머리를하고 우리를 반기고있다.

 

오늘의 들머리 계룡산 신원사지역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는 우리님들. 여기서부터 오늘의 본격적 산행 시작이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5분여만에 만나는 신원사 입구 사천왕문.

 

 

신원사(新元寺)는 652년(의자왕 12)에 보덕화상이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뒤에 다시 지은 것이다

경내에는 산신제단인 중악단, 5층석탑 등이 있으며, 주위에 고왕암·등운암 등 암자가 있다.

 

 

신원사(神元寺)는 조선 태조 3년(1394) 무학대사가 중건한 후 다시 고종 13년(1876) 보연화상이 중수하였다는 사찰이다.
계룡산의 서남쪽 자락에 자리잡은 절로 갑사, 동학사와 함께 계룡산의 3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서향으로 세워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건축으로, 정면 3칸은 동일한 간격으로 분할하여 중앙칸에

사분합 빗살문을, 좌우칸에는 사분합 띠살문을 달았는데 3칸 모두 상부에 ‘정(井)’자 살창의 교창(交窓)을 설치하고 있다.
건물의 측면과 후면은 판장벽으로 막았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후면에는 불단을 조성하여 삼존불을 모셨으며, 상부에

닫집(唐家)을 꾸미고 있다.


                       

 

                        국보 제 299호.    신원사노사나불괘불탱  (新元寺盧舍那佛掛佛幀)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노사나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길이 11.18m, 폭 6.88m 크기의 이 괘불은 노사나불이 단독으로 중생을 설법하는 모습으로,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다.

단독으로 그려진 노사나불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을 하고있다.  녹색과 홍색, 분홍색 등을 이용하여 옷을 표현하였고, 5가지색으로 빛을 형상화하여 주변 배경을 표현하였다.

중심 불상의 좌우에는 각기 다른 물건과 두광이나 옷색의 차이 등을 이용해 10대보살들을 표현하고 있다.

보살 위의 10대제자들은 서로 다른 얼굴 방향과 표정, 각기 다른 옷과 물건, 자연스러운 동작과 모습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인조 22년(1644)에 제작된 이 괘불은 짜임새있는 구도, 섬세한 표현, 밝게 표현된 색조 등이 세련된 솜씨로 표현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17세기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신원사 대웅전 우측에 자리 하고있는 영원전.

 

 

신원사 독성각.

 

 

신원사 범종각.

 

 

신원사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신원사 전경. 5층석탑과 석조등,

그리고 부속 건물들의 배치가 여유로워 보는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중악단 입구 대문간채.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으며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壇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중앙 뒤쪽에 단을 마련하고, 단 위에 나무상자를 설치하여 그 안에 계룡산신의 신위와 영정을 모셔 두었다.

 

 

대문간채에서 보는 중문간채와 그 뒤로 중악단이 일직선으로 자리하고있다.

 

 

 중악단.

계룡산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팔작지붕이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신원사 5층석탑.

신라 석탑의 전통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탑인데 5층 부분재료가 없어 졌다.

석탑이 서 있는 자라가 현재는 절 건물 중심부에서 벗어나 있는데 원래는 이곳이 신원사의 중심 이었다고 한다..

 

 

5층서탑에서 보는 중악단의 단아한 모습.

조선시대에는 한반도의 큰 정기를 품은 세 곳을 상악단, 중악단, 하악단으로 정해 매년 국가 차원의 산신제를 올렸다.
상악단묘향산하악단지리산에 그리고 중악단이 바로 이 계룡산에 자리하고 있는것이다.

 

 

신원사를 벗어나 바로 신원사 위에 자리하고있는 소림원의 대웅전.

 

 

소림원을지나면서 만날 수 있는 쌍둥이 돌탑.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이 많은 민족 이라고 했나요? 뭐 그리 빌 일이 많았는지,

이 돌탑을 쌓은이도 그 어떤 한 풀이와 소원을 빌며 한 돌 한 돌 쌓았을것을 생각하니 산신령이 들어줬스리라 생각된다.

 

 

신원사 주차장에서 신원사를 지나 고왕암 부근까지는 경사가 크지 않은 평평한 탐방로여서 주변을 둘러보며 산책하기 좋다.

 

 

신원사에서 600여미터를 오르면 만나는 갈림길. 연천 고개를 가기위해서는 우측 산길 탐방로로 접어들어야한다.

 

                                

 

              고왕암으로 향하는길은 돌무더기길로 걷기에 약간 불편하지만 산길의 운치를 느끼기 좋은 길 이다.

 

 

한 해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시산재를 지낸다.

보광암 오르는 임도길 끝의 넓직한 공터에서 조촐한 상차림을 하고 시산제를 치뤘다.

지난 한 해 동안 무사히 산행을 마침에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 감사하고, 올 한 해도 회원간의 회합과 사랑과 건강을 빌며 무탈하고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 이루어 지기를 기원해본다.

 

 

 극락교 : 고왕암 오르기 약 400m 전에 만나는 다리다.

엇그제 흣쁘린 눈이 아직 다 녹지않고 제법 미끄러울 정도로 쌓여있다.

 

 

임도에서 갈라져 400여 미터를 오르니 "연천봉고개 1.6Km'이정표와 길 좌측으로 대나무 숲길이, 우측으로 고왕암 오름 돌계단길이 보인다.

 

 

 고왕암 : 신원사의 부속 암자다.

'공주읍지'에 따르면 의자왕이 이 암자를 창건하도록 명하였으나 당시 당나라 소정방과 신라 김유신이 백제를 침공하여 미처 완성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때 백제의 왕자 융(隆)이 이곳에 피난하였다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자 이름을 고왕(古王)이라 햇다고 한다.

 

 

백왕전

 

                                

 

                                    

고왕암과 백왕전 사이의 바위에 양각으로 세겨진 입불상.

 

 

고왕암의 산왕각 : 산신령을 모시는 누각이다.

 

 

상왕암 옆의 산죽이 우거진 탐방로.

이곳은 머리를 숙이고 지나야 할 정도로 산죽이 우거져서 지나는 탐방객을 겸손하게 고개숙이게 만드는곳이다.

 

 

고왕암을 지나면서 만나는 산죽에 하얗게 눈 쌓인 경치가 너무도 여유로워 보인다.

 

신원사에서 주위의 풍광을 즐기며 걷는 여유로움은 여기까지.

연천봉고개 약 1.1Km를 남겨놓고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탐방로의 시작으로 눈까지 제법 쌓여있어서 수고와 주의를 해야하는 길이다. 

 

 

고왕암을 지나면 경사도가 급해지면서 바위와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법 눈도 쌓여 있어서 아이젠을 착용하는등 각별한 주위를 요한다.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다보면 작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예쁜 나무다리도 만난다.

 

 

 한참을 올라 온것 같건만 아직도 연천봉고개 0.6Km 이정표가 얄밉게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 제법 많은 수량을 자랑하는흐르는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또 오르기 위한 힘을 충전 해본다.

 

 

연천봉에 가까워질 수 록 탐방로가 가파르지만 난이도가 높은 지역마다 목재 계단과 데크가 잘 설치되어있어 탐방하기 수월한 편이다.

 

                                

 

연천봉 고개 4거리의 이정표. 우리가 오른길의 맞은편이 갑사에서 오르는길,

좌측으로 200m오르면 연천봉, 그리고 우측길이 관음봉을 거쳐 동학사로 이어지는 탐방로다.

 

 

연천봉이 잘 보이는 연천봉 아래 헤리포터에서 의 우리님들.

연천봉은 신원사 탐방로의 대표적인 봉우리로 해발 738.7m의 높이에 위치해 있다.

산봉우리가 구름(하늘)과 맞닿았다고 해서 연천봉이라 하고, 주변에 구름위에 올라탔다는 뜻의 암자인 등운암이 있다.

연천봉은 계룡8경의 하나로 저녁 무렵 노을(낙조)이 굉장히 유명하다.

 

 

 연천봉에서 보는 천황봉(845m).

천황봉에는 군 통신시설이 자리하고 있어서 아쉽지만 일반인은 오를 수가 없다.

 

연천봉에서 보는 앞의 문필봉과 관음봉, 그 뒤로 멀리 자연성릉과 삼불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연천봉에서 해발 816m의 관음봉을 지나 삼불봉 방향으로 이동하려면 자연성릉을 지나야한다.

 

 

연천봉 4거리 바로옆에 나무데크로 잘 조성된 조망대. 한 구루의 소나무가 명품인양 의기양양 뽐내고있다.

 

 

연천봉에서 내려와 관음봉으로 향하는 비얄길 탐방로.

이곳은 오늘 날씨가 푸근하고 했살이 좋아 눈은 다 녹아 없고 길은 꽤나 질척거렸다.

 

 

연천봉에서 약 1Km를 달려 도착한 관음봉입구 4거리.

이곳에서 정면은 은선폭포를 지나 동학사로 질러가는 짧은 탐방로 이고 우측은 천황봉으로 가는 통제된길,

좌측 능선길이 관음봉, 자연성릉, 삼불봉, 남매탑을 지나 동학사로 향하는길이다.

 

 

 이 4거리에서 우리는 200m 거리에 있는 관음봉 오르는 좌측 탐방로로 향한다.

 

 

관음봉 조망대를 오르는 우리님들.

이 탐방로도 나름대로 가파른길에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훨신 안전하게 힘든 오르막을 오를 수 있었다.

 

 

 관음봉 조망대에 오르니 눈앞에 자연성릉과 삼불봉의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연성릉은 마치 산의 능선 모습이 성벽모양과 흡사하다하여 부쳐진 이름이다.

 

 

관음봉 정상석.  이곳 관음봉 한운(閑雲)은 계룡산 8경중 제 4경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난, 관음봉에서 보는 하늘은 맑아서 운치있는 구름은 볼 수가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관음봉에서 보는 관음봉 정상석과 우리가 지나온 연천봉과 가운데 문필봉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관음봉에서도 천왕봉은 계룡산의 주봉임을 알리듯 바로 코앞에 버티고 있었다.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좀더 하얀 설경을 못보는게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관음봉에서 자연성릉 탐방로로 접어드는 내리막에서 보는 좌측의 천왕봉과 우측의 관음봉.

 

 

관음봉에서 자연성릉 탐방로를 걸으며 눈이 제법 쌓여있는 소나무 사이로 천황봉을 뒤 돌아본다.

 

 

자연성릉 탐방로는 좁은 능선길위에 철계단과 난간으로 안전장치는 돼 있으나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자연성릉길에서 보는 주위경관은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뒤 돌아본 관음봉에서 내려온 자연성릉 탐방로는 굉장한 비탈길로 어지간히 조심스러웠다.

 

 

자연성릉 탐방로에서 보는 기암과 소나무의 조화가 아름답다.

 

 

바위와 공존하는 여린 소나무가 주위의 풍경과 어우러져 묘한 자태와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또 하나의 묘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다시한번 천황봉을 바라보고 삼불봉으로 향한다.

 

 

 삼불봉, 한 겨울 눈꽃핀 삼불봉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삼불봉을 휘돌아 우회하며 멀리 보이는 천왕봉과 관음봉 그리고 자연성릉의 도도하고 아름다움을 다시한번 눈에 담아본다.

 

 

 남매탑(男妹塔)

남매탑은 계룡산에 있는 두 개의 탑으로 동학사에서 갑사로 넘어가는 삼불봉 중턱에 있는 상원암 근처 해발 615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계룡 팔경중 제팔경인 '오뉘탑의 명월'로 꼽힐 만큼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남매탑은 충남 지방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 청량사가 있었다하여 청량사지쌍탑이라고도 불린다.

 

 

5층 석탑은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7층 석탑은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량사는 임진왜란때 병화로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고, 이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일명 남매탑 또는 오뉘탑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2기의 석탑들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탑을 쌓은 돌들은 계룡산 일대의 존재하는 화강암류로 담홍색 흑운모화강암이다.

 

 

남매탑을 지나 동학사로 향하는 탐방로 옆의 계곡엔 아직 얼어있는 고드름과 얼음사이로 맑은 물을 흘려 보내고 있다.

저 얼음이 다 녹으면 이 계룡산에도 봄이 찾아올 것이다. 아니 지금도 봄은 저만치 성큼 다가와 있을것이다.

 

 

은선폭포에서 동학사로 내려오면 만나는 향아교(香牙橋)

 

 

동학사입구의 동학사 담장길.

 

 

 

동학사(東鶴寺)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동쪽에 학바위가 있어 동학사라 했다.

고려말·조선초 삼은의 위패를 모신 삼은각과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냈던 숙모전 등이 있다.

 

 

 동학사 숙모전 안의 삼은각동계사.

삼은각(三隱閣) : 고려 때 절의를 지킨 포은 정몽주•목은 이색•야은 길재 등 삼은(三隱)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고려 유신 길재가 월영(月影)•운선(雲禪) 두 스님과 함께 단(檀)을 설치하고, 고려 태조 및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를 지내다가 정몽주도 아울러 모셨다.

이곳은 조선 정종 1년(1399)에 고려 유신 유방택이 삼은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에 공주목사 이정간이 건물을 세우고 삼은의 제사만를 지내 삼은단이라 하였다. 세조 때에는 유방택과 이숭인, 나계종을 추가하여 6인의 제사를 지냈으나 이름은 그대로 삼은각이라고 하였다.

 

 

동학사 범종각.

 

 

동학사 부속건물. 비구니승려들의 처소인 듯..

 

 

삼성각(三聖閣)

 동학사 삼성각 (東鶴寺三聖閣) : 동학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4) 상원사라 하여 처음 지은 절이다.
삼성각은 삼성(칠성∙산신∙독성)의 탱화를 모신 곳이다. 가운데 칠성, 왼쪽에 산신, 오른쪽에 독성 탱화를 모셨다.

칠성은 북두 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主君)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산악 신앙의 토속신앙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는데 재물을 담당한다. 독성은 인연이 이치를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각각 도교∙토속∙불교신앙의 한 표현으로,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 요소가 합쳐진 형태이다.
불교 밖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 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하였다.

 

 

동학사 대웅전.

 

 

동학사 밖에 바라본 동학사 대웅전의 모습, 이끼낀 돌축대와 고목이 세월의 흐름을 말 해 주고있다.

 

 

동학사삼층석탑(東鶴寺三層石塔) :

동학사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청량사지(계룡산 남매탑이 있는 곳)의 암자에서 옮겨진 탑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석탑은 동학사를 창건할 당시에 건립하였다고 하나 각부의 양식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탑신부의 3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의 맨 윗돌은 탑신의 지붕돌과 같이 윗면에 비스듬한 경사를 두었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적당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동학사를내려와 만나는 미타암.

 

 

동학사를내려와 만나는 길상암.

 

 

동학사를내려와 만나는 관음암.

이곳 미타암, 길상암, 관음암은 동학사 아래지역에 서로 나란히 자리하고있다.

 

 

계룡팔경 선정기념 조형물.

맨 좌측이 '생각하는여인' 우측 뒤로 '자연과인간' 그리고 가운데가 계룡산의 웅자를 소녀의 애띤 자태를 빌려서 형상화한

'계룡의얼굴(烏石의 小女)'이다.

 

 

 동학사 일주문.

이즈음이면 90일동안 동안거에 들어갔던 스님들이 이 일주문을 통해 중생구재를 위해 속세로 나아갈 것이다.

동안거(冬安居) : 겨울인 음력 시월 보름날부터 이듬해 정월 보름날까지, 승려들이 일정한 곳에 머물며 도를 닦는 일.

 

 

계룡산 동학사 지역 탐방지원센터.

이곳을 지나며 실질적인 오늘 계룡산 시산제 산행을 마친다.

 

 

모든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밤하늘에 스카이 라인만 보이는 오늘 올랐던 계룡산을 바라본다.

지난 한 해 동안 무사히 산행을 마침에 감사하고, 올 한 해도 회원간의 회합과 사랑과 건강을 빌며 무탈하고 즐겁고 행복한 산행을 기원하기 위해 걸었던 길을 되짚어 본다.

오늘 시산제를 위해 열성과 성의를 다해주신 운영진 여러분 그리고 물질적 도움을 주신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신 모든분께 감사와 수고의 말씀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