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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가야산의 해프닝과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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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꼭 두가지가 존재한다.

틀리거나 맞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흔한 말로 'To be or Not to be'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예를들어 '좋은것'과 '나쁜것' 사이에 '추한것'을 끼어 넣는 그런것이다.


모처럼만에 (본인 같은 산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는 당연하지만) 가야산을 찾았다.

아침 이른시간에 산악회를 따라 가야산 백운동주차장에 도착하니 11시다.

날씨는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데 어제밤부터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치더니 오늘은 바람까지 준 태풍 수준이다.

주어진 시간은 6시간, 이곳 백운동에서 가야산 오르는 길은 비교적 쉬운 용기골길과 능선길인 만물상길 두갈래.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시간 주차장에서 약 10분여 거리에 있는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를 지난다.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정면으로 용기골 탐방로 입구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 만물상 탐방로 입구가 보인다.

오늘 동행한 파트너와 나는 만물상 탐방로로 접어든다.


만물상 탐방로는 용기골탐방로와 달리 초반부터 깔딱고갯길을 올라야하고

산행시간도 용기골탐방로보다 1시간 정도 더 시간 걸리며 그만큼 수고를 더 쏟아야한다.


1972년 10월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37년간 개방되지 않았던
만물상구간(연장2.49㎞, 백운동야영장-만물상-서성재) 탐방로가 2009년 6월 개방되어 많은 산꾼들이 찾는다.


만물상탐방로를 한참 오르니 전망이 트이며 좌측 아래로는 심원사가 보인다.

심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심원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사찰이다.


계속 오름길 전방에는 서장대 아래 1096봉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한 모습을 보인다.


우측으로는 1005m의 동장대와 동성재로 이어지는 능선이 자리한다.



뒤로 보이는 수륜면 백운리의 모습도 정겹게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은 이른듯한 점심과 휴식을 갖는다.

이른아침 집에서 밥을 먹는둥 마는둥 했더니 오며 간식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팟다.


잠간의 점심을 겸한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다시 오르는길에 979봉이 우리를 반긴다.


979봉을 오르면서 만물상의 모습은 그 이름값처럼 진가를 발휘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점심 휴식 후 같이 출발하여 30여분 올랐을때 당연히 내 뒤에 있어야될 파트너가 보이지가 않는다.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땀에젖은 웃옷도 한 거풀 벗을겸 쉬며 10여분을 기다리는데 그래도 나타나지가 않는다.

불길한 생각에 배낭을 꾸려 한참을 거꾸로 내달리니 저 아래서 올라오는 친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연인즉 점심먹고 올라오며 사진를 찍으려고 핸드폰을 찾으니 점심먹을 때까지 있던 핸드폰이 배낭에도 옷 주머니에도 없다는거다.

 

오늘 가야산 산행은 내가 가자고 해서 온 산행인데 산에서 새로산 핸드폰이 분실 됐다니 본인보다 내가 더 걱정됐다.

그 핸드폰은 요즘 최신형으로 거금 100만원이 넘게 준걸로 알고 있는터라 산행을 접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  

아까 점심먹은곳으로 내려가며 산길을 뒤졌으나 보이지 않는다.

혹시 누가 주웠으면 좋겠다는생각으로 전화를 10번 넘께 걸어봤지만 땅에 떨어져 있는지 혼자 신호만 가다 끝어지기만한다.


그렇게하여 전화기를 찾아 헤메다보니 시간은 1시간이상 흘렀고 올랐던길을 되짚어 내려오니

산행거리도 거진 출발점 가까이에 있어서 오늘 가야산 산행을 자연스레 취소하게된다.

그러나 우리가 타고 가야할 버스가 해인사쪽에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해인사까지는 가야된다.

주차장까지 내려와 해인사가는 교통을 알아보니 여기서는 택시를 이용하여야 한단다.


[해인사 일주문]

거금을 들여 택시로 해인사 입구에 도착하니 출발 시간까지는 너무많아 기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온거고 남는시간이니 해인사를 둘러본다.

물론 틈틈이 행여나 누가 전화기를 주워 전화 받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전화번호를 연실 누루는것도 잊지않는다.


해인사입구의 고사목.

이 나무는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덕에 보답코자 법당과 승료 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 느티나무는 1,200여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45년에 수령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해인사 입구의 또 다른 고목. 오랜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다.


해인사 천왕문(봉황문)앞에는 "해인총림"이란 현판이 있고 안에는 "봉황문"이란 현판이 보인다.


해탈문을 들어서기전 담장옆의 단풍.


해인사 해탈문 

  앞에는 "해동원종대가람"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안에는 "해탈문"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해탈문을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하며 사찰 중심전각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이다.

해탈문은 깨달음의 세계, 곧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란 뜻이다.

不二란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상이나 존재들이 다름이 없으며 근원은 하나라는 의미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국사단 앞에 자리하고있는 소원나무.

소원을 적어서 이 나무에 달고 국사단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소망하는 일이 꼭 이루어진단다.


구광루(九光樓)

 사찰에 따라서 보제루, 보화루, 우화루, 만세루 등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건물의 용도도 사찰에 따라 다르다.

 해인사에서는 아래층은 찻집, 윗층은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구광루는 들어오면서 보면 2층구조지만 안으로 들어와서 보면 단층구조로 보인다.


범종각과 마주하고있는 보경당.


범종각


구광루 앞의 공양수.


대적광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6호, 해인사 중심전각으로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다.

 중앙에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하였다.


괘불대.

괘불이란 법당 밖이나 야외에서 의식(야단법석)을 행할 때,

그곳에 큰 불화를 내거는 일이나 그 불화를 말하고,

 불화를 걸어두는 긴 막대기를 괘불(掛佛)대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그 불화를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 긴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


삼층석탑.

높이 6m.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4호.

일명 정중탑(庭中塔)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석탑이 사찰 안 넓은 마당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유래된 명칭으로 보인다.

본래는 상하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린 일반형 석탑이었으나,

1926년 중수 때 기단을 확장하고 더 높게 하여 원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석등.

 높이 3.1m.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5호.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해인사 삼층석탑보다 조금 늦은 9세기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궁현당.


대적광전의 뒷모습.


"팔만대장경"이란 현판이 보인다. 안에는 "보안당"이란 현판이 있다.

이곳을 들어서면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있는 법보전으로 들어선다.


팔만대장경판전 두 건물중 앞 건물을 수다라장.


뒷 건물을 법보전 이라 부른다.


팔만대장경판전. 국보 제5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장경판전은 과거 출입이 자유로웠지만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 이후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이 때문에 대장경을 보관중인 내부는 물론이고 수년간 마당조차 외부에 개방되지 않았다.


명부전과 응진전

선열당은 노전스님과 부방장스님 거처다. 응진전 뒤에 있다.

퇴설당은 방장스님 처소다. 선열당 위에 있다.


정수당(공양간).


해인사 일주문의 안쪽 현판에는 '해동제일도장'이라 써있다.


당간지주(幢竿支柱 )와 일주문.

당간지주란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 앞에 설치했던 건축물로서 그 주변지역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다.

보통 돌로 만들지만 철·금동·나무로도 만든다.

2개의 기둥을 60~100㎝ 간격으로 양쪽에 세우고

마주보는 안쪽 면에 간을 설치하기 위한 간구나 간공을 두고 아래에는 간대나 기단부를 설치했다.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 대장경 판전 기념비.

이 비석은 팔만 대장경이 아니라 대장경을 보관하고있는 건물인 수다라전법조전인 '장경판전'의 비석이다.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해인사를 나와 많은 스님들의 부도비와 공덕비가 안치되었는 해인사 비림.


길상탑

높이 3m. 보물 제1242호.

높고 넓직한 지대석을 마련하고 기단부 위에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며,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자운 대율사 부도비.


해인사 비림을 지나며 오늘 반토막, 아니 망처버린 가야산 산행과 해인사 관광을 마무리한다.

다행이 잃어버린 휴대폰은 차에 돌아와서 찾을 수 있었다.

파트너가 아예 처음부터 차에서 내릴때 빠트렸던거였다.

전화해도 아무도 발견 못한건 소리를 진동으로 해놔서 차에계신 기사분도 몰랐단다.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난 가야산 산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