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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월악산 - 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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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月岳山)  영봉(靈峰 1097m )

월악산은 기암절벽이 치솟아 산세가 험준하고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주봉은 영봉(1,097m)으로 불리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가는 유월,

모처럼만에 월악산을 길게 산행하는 모집산악회를 따라 월악산으로 향한다.

월악산을 다녀왔던게 언제인지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햇수를 헤아려보니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산행길 : 들머리 - 수산리 보덕암입구,            날머리 - 송계리 덕주탐방 지원센터.

                                                              수산리 수산교 - 보덕암 - 하봉 - 중봉 - 영봉 - 신륵사 삼거리 - 송계삼거리(영봉공원지킴터) -

                                                              마애불 - 덕주사(덕주탐방 지원센터) - 동문(덕주루) - 송계계곡주차장.

                                                 산행거리 : 약 12Km

                                                 산행시간 : 6시간 30분 (점심, 휴식포함)



산행은 청풍호 라고도 불리우는 충주호의 월악나루 선착장에서 한참을 더 가면 만나는 

덕산면 수산1리 수산교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한다.


날씨는 맑으나 바람은 거의 없으며 기온은 30도를 웃도는 듯한 느낌이고,

수산교에서 제천옛날학교캠핑장을 지나 보덕암까지 이어지는 급경사의 2.2Km임도길은

아직 제대로 산길도 못 들어선 나를 벌써부터 지치게 만든다.


비록 시멘트포장의 임도길 이지만 주위의 숲과 나무는 강렬한 햇빛에 투과되어 신선함을 자아낸다.


힘겹게 헐떡이며 시멘트 포장길의 끝까지 가보니 보덕암 입구가 보이고

입구 좌측에는 '一日不作 一日不食'과 함께  '가난은 돈이 없는게 아닌라 욕심이 많은 것일세'라는 글이 보인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은 옛 중국 선인 마조 문하의 3대사 중 한 사람인 백장(회해)가 남긴말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를 말라'는 즉 '게으름 피우지 말라'는 가르침의 뜻이다.


보덕암의 경내에 들어선다.

보덕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정면으로 대법당(대웅전)이 마주보인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대웅전을 신축할때 절터에 흩어져 있던 약 150매의 부재를 수습하여쌓은 전탑이 있다.

그리고 보덕암 뒷편으로는 염주를 만드는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고

겨울이면 천장의 물이 떨어져 밑에서 부터 위로 솟는 '역고드름'이 유명한 '보덕굴'이 있다. 


등반 시간이 정해진 관계로 굴은 보지못하고 본격적으로 산행길이 시작되는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에 들어서니 휘어진 끝이 안보이는 통나무 계단이 산객의 기를 꺽어 놓으려는듯 버티고 있고

이 깊은 산중에서 갑자기 섹스폰 연주 소리가 정막을 깨고 월악산 골짜기에 울려 퍼진다.

소문에 의하면 이 섹스폰 소리는 배운지 6년 됐다는 보덕암의 주지 '덕인스님'의 연주 소리란다.


섹소폰 소리에 홀려 힘든줄 모르고 험한 게단을 오르니 거대한 바위가 길을막아 바위옆으로 진행한다.


월악산은 예전에 경험해봤고 명성 또한 많이 들어 악(岳)자 들어간 산 치고 힘들지 않은 산 없지만

오늘 오랫만에 찾는 월악산은 유난히 나이도도 높고 힘든것 같다.


하봉을 아직 못 오른 지점에 첫 전망대를 만난다.


첫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충주호 전경.

관광선을 탈 수있는 월악선착장과 가로로 보이는 '월악교'와 세로로 보이는 '송계1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좌측으로는 등곡산과 뒤로 계명산이 있는 계명지맥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충주호 상류에 해당하는 곳에 금수산이 자리 할 것이다.


갈길이 멀어 하봉을 향해 오르며 뒤로 보이는 충주호 절경에 눈길이 다시간다.

 

진행방향에는 '하봉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고,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하봉'이다.


하봉 아래 봉우리를 넘어서 하봉으로 향하며 하봉과 연결되어있는 구름다리가 인상적이다.


구름다리를 건너니 하봉이 보이고 하봉 오름길에 위험하게 놓여있는 계단길도 아스라이 보인다.


오름길에서는 어디서든 뒤 돌아보면 시원스레 펼처있는 충주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충주호 하류에는 '충주'가 자리하고 있어 당연히 '충주호'라고 부르지만

'청풍면'이 자리하고 있는 상류쪽 에서는 청풍지명을 따라 '청풍호'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오름길에서 하봉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보이고,


하봉을 오르는 깍아지른듯한 철계단 옆으로 바위와 바윗사이에 또 다른 바윗덩이가 아찔하게 걸터앉이있다.


중봉을 오르며 또 뒤를 돌아본다,  뒷모습에 미련이 남아서일까?

맞다 뒤에보이는 충주호의 모습이 오르는 위치마다 보는 각도가 달라지며 더 넓게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거친? 계단을 또 올라 중봉으로 향항다.

예전을 기억해봐도 결코 쉽게 오른 산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까지 계단이 많았나 싶다.


중봉에 오르니 드디어 월악산 정상 영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 방향에서 보는 영봉은 좌측은 완경사에 숲이 우거져 있지, 우측은 깍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진 모습이다.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을 조금더 가까이보니 영봉 끝까지 이어져 있는 계단이 보인다.


한 없이 곧고 높고 길게 뻗은 철계단,

이 계단만 오르면 월악산 정상인 영봉이려 하며 힘겹게 오른다.


하지만 마지막 계단이려니 했던건 완전한 본인의 착각 이었고,

아까 보이던 계단에서 10분 정도면 다 오르겠다고 생각 했던게 30분 가까이 소요됐다.


어쨌거나 걸어 올라왔건, 기어 올라왔건 드디어 정상에 올라왔다.


'월악산'은 1984년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287.571k㎡이다.

지형적으로는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월악산은 기암절벽이 치솟아 산세가 험준하고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주봉은 영봉(靈峰)으로 불리고 있다.

서울 북한산에도 영봉 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산 정상의 주봉(主峰)을 영봉(靈峰)으로 불리우는 산은

우리나라에서 백두산과 이곳 월악산 둘 뿐이다, 그만큼 신령스럽다는 이야기다.


월악산 국립공원은 만수봉, 금수산, 신선봉, 도락산 등 22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산과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또한 충북 제천시, 단양군, 충주시와 경북 문경시가 접해 있으며 수도권에서 가깝고

충주 호반과 어우러진 탐방지로 사계절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월악산 영봉에서 충주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아본다.

이 영봉을 내려가면 충주호를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봉을 내려서며 영봉 전망대를 담아본다.


올라온 높이가 높은만큼 내려가는 길도 올라온 길에 비례 하나보다.

내림 계단 아래를 바라보니 급경사에 구불구불 꺽어져 있는 계단이 현기증을 일으키려 한다.


내려서는 계단이 경사도 급하고 힘들어 잠시 앞을 보니 바위위에 자리잡은 소나무군락이 멋진 모습을 선사한다.


일단 한 고비 힘든 계단을 내려서서 위를 처다보니 그야말로 끝이 안보이게 굽은 계단이,

내가 어떻게 저 계단을 내려왔나 의아해 할 정도다.


계단을 내려서니 절벽위 암벽사이로 길이 보이고.


암벽 아래로 이쪽과 맞은편 사이의 계곡을 잇는 그물지붕을 가진 철다라를 만난다.


철다리 위에서 발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내가 구름위에 떠 있는듯 드넓은 풍경이 내 발아래 펼쳐저 있다.


신륵사 삼거리의 이정표.

진행 방향에서 좌측이 신륵사, 그리고 직진하면 마애불과 덕주사를 만난다.

오늘 날머리는 송계계곡 주차장이기에 덕주사 방향으로 직진한다.



험한 계단길을 벗어나 모처럼 흙길을 밟아본다.

월악산 국립공원 명성답게 우거진 숲도, 멀리 내다 보이는 경관도,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경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신륵사 삼거리에서부터 기분좋은 흙길을 한참 걷노라니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 다다른다.



쉼터에서 조금 더 진행하니 송계삼거리의 이정표가 보이고, 각자 자기 갈길을 지도를 보며 확인하는 산꾼들을 만난다.


이곳은 지광사가 있는 송계리와 내가 진행 할 덕주사길의 삼거리로 '영봉공원지킴터'가 자리하고있다.


영봉지킴터를 벗어나 덕주사로 향하는 하산길에는 또 다시 계단의 연속이다.

이 계단은 앞에 960m봉을 다시 넘어야 하기에 거처 가야 할 계단길이다.


하산길의 960봉을 오르며 잠시 뒤를 돌아보니 더 이상 못볼줄로 알았던 충주호와 영봉의 암벽 경사면이 시야에 들어온다.


영봉의 모습을 조금 더 당겨본다.

우측이 영봉이고 좌측으로 중봉, 그리고 중봉 뒤로 부끄러운듯 살짝 고개 내밀고 있는 하봉이 조망된다.


960봉에서 내려오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아 험준한 가파른 계단과 바위틈새를 비집고 내려와야한다.


험준한 바윗길이 힌든대신 좌측 절벽 건너편 으로는 절골로 가는길의 대스랩이 월악의 분위기를 말해주고있다.


960봉에서 계속 내리꼿는 듯한 급경사의 바윗길과 계단은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하지만

그래도 그 험로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변 조망은 힘듬을 충분히 보상 해 주는 느낌이다.


험로를 내려오며 가끔 올려다 보는 뒷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커다란 암벽을 끼고 도는 하산 길에는 기암들이 월악의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이 바위 이름은 무엇일까?

하산길의 힘든 와중에도 가끔 보여주는 자연 경관이 산행의 지루함과 힘듬을 보상해 주고있다.


오랫만에 월악을 찾아서일까..   예전에도 이렇게 계단이 많았었나 의문이 간다.

하기사 어렴푸시 기억해 보면 예전에는 이렇게 계단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신 기다시피 하며 오르내렸던 기억이 살아난다.

마애불 삼거리를 목전에 두고 처음 오름부터 이곳 내림까지 계단으로 시작하여 계단으로 끝난것 같다.


그렇게 험한 계단길과 주변의 파노라마 같은 풍광을 즐기다보니 '마애불' 삼거리다.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덕주사로 바로 하산할 수 있고 나는 시원한 '감로수'가 기다리고 있는 '마애불상'을 보러간다.


급경사길을 잠간 오르니 큰 바위에 양각으로 조각된 거대한 '마애불'입상을 만난다.

마애불입상은  높이가 13m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406호'로 지정되어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마의태자'의 여동생인 '덕주공주'가 이 불상을 조성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마애불 우측 동쪽 바위 위에는 '극락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극락보전'이란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를 축소시켜 묘사한 곳으로, 아미타전(阿彌陀殿) ·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전(極樂殿)은 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어 예배하는 이들은 서쪽을 향하게 된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신다.


그리고 마애불 뒷편으로 '삼성각'이 있고 그 아래 작은 굴 안에는 '마애불 감로수'가 샘솟는다.

이 감로수샘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풍부한 수량과 함께 물 맛도 일품이다.


극락보전앞 뜰에서 멀리 월악산과 함께 삼성각, 마애불을 같이 담아봤다.


'덕주계곡'이 시작되는 마애불을 뒤로하고 하산하는 탐방로는 전형적인 육산길을 보여준다.


한참을 내려가니 성터가 나타난다.

이 성터는 아마도 이 돌 성위에 누각이 있었을것 같은 모양을 하고있다.


그리고 덕주계곡을 가로지르는 두개의 다리를  넘나드니 월악산 산길의 끝을 보여준다.


덕주사 앞에 자리하고 있는 '덕주탐방지원센터'를 지난다.

수산리에서 등반을 시작하여 이곳 덕주사까지 거의 6시간 여만에 산길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주차장 까지는 아직도 20여분을 더 내려가야한다.


덕주사 앞 광장의 월악산 영봉 알림석과 '약사여래입상'.

'약사여래입상'은 고려시대 석조 약사여래입상으로서

1985년 중창 당시에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한수면 역리에 있던것을 덕주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덕주사(德周寺)  대웅보전(大䧺寶殿).

'덕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신라의 마지막 공주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마애불이 있는 이곳에 머물러 절을 세우고, 금강산으로 떠난 마의태자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덕주사 관음전과 약사전.

원래의 덕주사는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 앞에 있었는데, 1951년 군의 작전상 이유로 소각하였다.

창건 당시의 절을 '상덕주사', 지금의 절을 '하덕주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의 '덕주사'는 1963년에 중창되었고, 1970년과 1985년에 각각 중건하였다.

덕주사 범종각(梵鐘閣),


덕주사 '대불정주비각'과 동자상.


'대불정주비각'

1988년 2월에 월광사지 입구 논두렁에서 발견 되었다는  비석으로

모두 105자로 추정되며 내용은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비석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너비 163cm, 높이 161cm 의 네모난 형태다.


덕주사 '산신각'.

큰 바위와 조화를 이룬 산신각이 이채롭다.


덕주사 앞마당에는 시원한 감로수가 덕주사를 찾는 이들에게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덕주사를 떠나며 잘 닦여진 도로에서 대웅전과 범종각이 월악산과 잘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덕주산성(德周山城) 남문 의 '덕주루(德周樓)'

산성둘레 약 2,000m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있다.

현재 유구는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동문·북문 등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신라경순왕의 큰딸 덕주공주(德周公主)가 피난하였던 곳이라고 전해 온다.



덕주산성 남문을 지나며 오늘 월악산 산행을 마무리한다.

거리상으로 약 12Km정도여서 5시간 정도면 등반을 마칠거라 생각 했었는데 그건 나의 오판 이었다.

전에 월악산을 다녀 왔을때도 쉽게 등반한것 같지는 않지만 아마도 등반길의 70%는 계단길 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고생끝에 낙이 있다고 했던가? 오늘 산행이 힘들었던 만큼 월악산이 나에게 보여준 멋진 풍광과 함께

안전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도록 나를 받아준 월악산에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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