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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북도

조계산의 선암사,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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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산(曹溪山) 장군봉(將軍峰), 884m]


     조계산(曹溪山)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승주읍·주암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해발 884m이다.

                            조계천 계곡을 사이에 두고 뻗은 능선이 동서로 나란히 대칭을 이루고 있다.

                            본래 동쪽의 산군을 조계산이라 하고 서쪽의 산군을 송광산이라고 했으나 조계종의 중흥 도량산이 되면서

                            조계산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송광산이라고도 한다.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仙巖寺) 일주문]


     선암사 (仙巖寺) :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 대한 불교 조계종 제20교구 본사.

                             542년(신라 진평왕 3)에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헌강왕 1)에 도선 국사가

                             남방비보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와 함께 선암사를 창건했다.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송광사 (松廣寺) 일주문]


     송광사 (松廣寺) : 전라 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에 있는 큰 절이다.

                             사적 제506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이며, 이전에는 대길상사·수선사라고 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이며,

                             '송광' 이라는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에서 비롯되었다.





                산행지 : 조계산 (884.3m...전남 순천시)

                산행코스 : 선암사~장군봉~배바위~작은굴목재~보리밥집~대피소~송광굴목재~송광사~주차장.

                산행시간 : 5시간 반,  (점심 휴식포함)



어느덧 계절의 여왕, 장미의계절,이라는 오월이 훌쩍 우리곁을 떠나가고,

푸르름이 우거져 가히 실록의 계절이라 일컬을 수 있는 유월이 짠~ 하고 나타났다.


유월의 어느 휴일,

그간 이십여일 이상 바깥 구경을 못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변변한 배낭 하나 꾸리고 산길을 찾아본다.



오래간만에 찾은 바같세상의 도로변은 철쭉대신 노란 금계국이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고

산야의 하얀 아카시아 피던 자리에는 어느새 누르스름한 밤꽃이 누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선암사 첫 번째 부도밭 앞을 지난다.

선암사는 워낙 고찰 이다보니 그간 많은 고승들의 사리와 공덕비가 많은게 당연할 듯 하다.

오늘 조계산을 넘기위해 네 시간 가까이 버스에 실려와 선암사 입구 주창에서 선암사로 오르는 길이다.



부도밭을 지나며 만나는 좌측 계곡에는 맑은 물이 시원스레 소리내며 흐른다.



동부도밭 앞의 '선교양종대본산'(禪敎兩宗大本山) 입석,

이는 선암사가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을 한데 아우른 본산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선암사 동부도밭의 '부도와 공덕비',  좌측 끝의 '화산대사' 사리탑이 유독 눈에 띈다.



부도밭을 지나며 '방생정계'(放生淨界)돌장승과 나무장승을 만난다.



[보물 제 400호 승선교(昇仙橋)]

그리고 만나는 선암사의 명물 승선교(昇仙橋)가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있다.

승선교는 우리나라 무지개다리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다.

홍예석 중간에 이무기돌(용머리)을 돌출시켜 장식효과에 재해를 막는 효과를 더했다.  



[강선루(降仙樓)]

강선루(降仙樓)는 선녀가 내려온다는 뜻을 지닌 누각으로서 팔작지붕의 2층 구조이고,

측면 기둥 하나가 계곡 아래까지 뻗어 있는것이 특징이며, 여기서 부터 선암사 경역이 시작되는셈이다.

강선루(降仙樓)에는 현판이 안과 밖에 두개가 걸려있는데 바같쪽에는 김동희, 안쪽에는 윤용구의 필적이다.


 

선암사 입구의 편백나무숲과 고사목.

선암사 입구에는 편백나무숲과 함께 차나무 밭도 있어 힐링에 더 좋은 조건을 같추고있다.



[선암사 일주문과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 현판]

일주문(曹溪山仙巖寺) 뒤편에는 해득하기 어려운 전서가 걸려 있다.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로 지금은 조계산이지만 옛날에는 청량산이었고 선암사는 원래 해천사 이었음을 말해준다.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범종루'와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太古叢林曹溪山仙巖寺) 현판.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太古叢林曹溪山仙巖寺)란 고려 말 태고(太古) 보우(普愚)를 종조(宗祖)로 삼는다는 의미다.



[만세루와 육조고사(六朝古寺) 현판]

이 현판은 서포 김만중의 부친 김익겸(金益兼·1614~1636)의 글씨다.

육조(六朝)는 중국역사의 문화사적인 시대 구분 중 하나로 후한이 멸망한 후 수(隋)가

통일되기 전에 있었던 오(吳),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여섯 조정을 말한다.

보리달마가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쑹산 소림사에서 선법을 폈으니 선종의 법통을 이어 받은 절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만세루를 지나면 우측으로 만나는 '범종각'.



[대웅전과 삼층석탑].

삼층석탑은 보물 제395호로 높이 470cm의 규모다.

대웅전 앞에는 규모가 같고 양식이 동일한 석탑 2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이루어졌다.

하층기단은 넓은 지대석 위에 놓여 있는데 4개의 긴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다.



[선암사 대웅전(大雄殿)]

대웅전 현판 글씨는 조선 23대 왕 순조의 장인 김조순의 필적이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1년 6월 8일 대한민국보물 제1311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우측에 자리 하고있는 '설선당'과 '응향각'.

설선당은 염불당 이라고도 하고, 응향각은 대웅전을 관리하는 스님이 거처하는 곳이다.



만세루 방향에서 내려다보는 '범종루'의 모습.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아래층 중앙이 통로 역활을 한다.



대웅전에서 설선당 아래로 내려오며 만나는 '감로수'.



설선당과 박물관 건물사이의 길을 따라 선암사를 빠져나간다.



해우소(뒤깐). '뒤깐'의 '깐' 자의 자음이 'ㅅㄱ'으로 써 있는게 익살스럽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절집 화장실이다.

크고 깊은데다가 냄새도 없고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丁’자형 건물로 많은 사람을 수용하도록 2열로 배치되었다.

가장 안쪽에 앉아 벽면을 보면 바깥 숲속의 경관이 들어온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



선암사를 둘러보고 떠나며 특이한점을 발견한다.

선암사에는 다른 절간에는 다 있는 '사천왕문'이 없었다.

그 까닭이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따로 만들지 않았단다.

또한 선암사에는 '해탈문'이라 불리는 '불이문'이 없고 그 구실을 하는 데가 '범종루'인것 같았다.



선암사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조계산 산행길에 접어든다.



[마애여래입상]

선암사에서 장군봉을 향해 오르다 좌측에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을 만난다.



마애여래입상은 5m크기의 평평한 암벽 위에 음각으로 조각 되어있다.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없으나 고려 중, 후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등반길은 대각암 입구까지는 잘 조성된 흙길이다.



장군봉을 향해 오르며 대각암 옆을 통과한다.



오르는 길목에는 조릿대(산죽)숲이 우거진 곳을 지나고,

이런 산 오름길은 역시 남도에서나 볼 수 있는 산길의 풍경이다.


 

때로는 목침으로 만든 계단길을 오르고,



유월의 조계산길은 그야말로 녹음이 우거져 하늘이 안보일 정도이다.



한참을 마치 수도승이 수련하듯 가쁜숨을 몰아서며 오르다보니 돌무덤과 함께 '향로암터' 안내판을 만난다.



그리고 그 옆 옹골진 곳 에는 돌구덩 사이로 약수가 졸졸 흐르고있다.

누군가 물을 받을 수 있는 스텐그릇이 있어 한사발 그득 받아 목도 축이고 손수건도 적셔본다.



얼마를 걸었을까?

힘드게 오르다보니 장군봉 0.4Km 이정표를 만난다.

정상까지 400m만 가면 정상 이라는 말인데 어느산 이던 400m남겨놓고 힘들지 않은 산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 부터는 완전 고바위에 힘들면 잡고 가라고 난간까지 설치되어 있다.

힘 좋은 젊은이들은 쌩쌩 힘 하나 않드는 표정으로 잘도 오르는데 이 몸은 천근만근 헉헉댄다.



그렇게 오르다보니 앞의 밝은 빛과 함께 하늘이 뻥 뚫리며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에 오르니 돌무덤이 먼저 보이고 그 뒤로 정상석 주변에 산꾼들이 몰려있다.



어렵사리 기다려 낮선이에게 사진 한 장 부탁하여 '장군봉' 인증사진을 밖아본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 볼게없고 정상 주변 모습을 다시 한 번 훌터보며 갈길을 제촉 해본다.



이정표를 바라보며, 온 거리와 갈 길을 가늠해보며 작은굴목재로 향한다.



하산길은 올라온 것에 비례하여 내리막도 급경사고 길도 육산도 골산도 아닌 잡석이 깔려있어 만만치가 않다.



[배바위]

장군봉에서 조금 하산하여 조계산에서 유일무일하게 바위 덩어리를 만난다. 일명 배바위다.

이 배바위는 아득한 옛날 세상이 물에 잠겼을때 배를 묵어 두었다는 전설과

옛날 신선들이 이 바위 위에서 바둑울 두었다하여 신선바위라 불렸다는 전설이다.



배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조계산 정상 장군봉.



배바위에서 바라보는 선암사 계곡의 선암사와  상사호 저수지.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무등산이 있을법한 굴곡없는 산세가 이곳 민심을 대변해주는듯 하다.



작은 굴목재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꺽어 길을 다시 잡는다.



한참을 내려가 다시 만나는 이정표에서 보리밥집을 보며 하산길을 재촉한다.



이곳 하산길에는 쪽동백나무꽃이 눈높이에서 활짝피어 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국 산에 흔하며 꽃 모양이 때죽나무꽃과 비슷하여 많이 혼동 하기도 한다.



연산봉 갈림길을 지나고.



신평천이 시작되는 골짜기에는 3개의 장박교를 지난다.



장박3교와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장박2교를 건너고.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는 제법 물이 고인 곳도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3개의 다리중 장박1교를 마저 건넌다.



내려올 수록 계곡수량도 점점 늘어나는것을 알 수가 있다.



이곳 조계산은 숲은 우거져서 좋으나 배바위를 빼고는 산행 내내 터진 조망이 없는게 아쉽다.



제법 큰 바위아래에 누군가가 익살스런 모습으로 나무 지랫대를 고여놨다.



작은굴목재에서 계속 하산하여 송광사로 가는 길목에 보리밥집이 산꾼의 발길을 이끈다.



이곳에는 예전에 보리밥집이 한 곳 뿐 이었는데 지금은 세 집이 있는것 같다.



보리밥집 끝자락에는 계곡물을 받아 돌아가는 물래방아가 삐그덕 거리며 힘겹게 돌고있다.



보리밥집에서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오니 대피소가 보인다.

별 시설은 없고 전면이 개방된 모습으로 아쉬울때는 요긴한 시설이다.



대피소 앞의 이정표.

선암사와 송광사 딱 중간임을 알려주고 있지만 여기서 선암사 거리는 5Km가 훨신 넘는다.



그리고 비교적 걷기좋게 마포를 깔아놓은 내리막길 주변에는 피나물이 노란꽃을 피우고있다.



대피소에서 약 1Km정도를 내려오니 돌로 둥근 벽을 쌓아 만든 송광대피소를 만난다.



송과대피소 안에는 쉴 수 있는 목재시설도 가추어져 있다.



이곳 하산길 역시 주위의 전망이라고는 송광사 앞으로 흐르는 신평천 상류의 홍골계곡과 울창한 나무뿐이다.



여기에서 공식 명칭은 없고 토다리라고 불리는 똑 같은 모양의 다리 두개가 각까운 거리에 놓여있다.



나름대로 운치있게 흐르는 계곡을 감상하고,



다시 만나는 또 하나의 같은 모양의 다리를 건넌다.



그리고 만나는 이정표의 송광사 1.2Km가 반갑게 눈에 들어온다.



비록 콘크리트 구조물 이지만 운치있는 작은 다리도 건너고,



그런대로 수량은 적지만 그럴듯한 이름을 갖고 있는 '비룡폭포'도 만난다.



아마도 이 다라가 '토다리'인듯 제법 규모있는 목재다리를 건넌다.



깊섶 아래로는 수량은 적지만 쉬기좋은 바위사이로 계곡물이 시원스러 보인다.



계곡과 숲에가려 한참을 내려오니 어둠에서 광명을 찾듯

산길이 사라지고 땅콩과 기타 채소를 심은 넓은 전답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나타나는 대남무숲,

그 크기와 규모가 감탄시가 절로 나올정도로 울창하다.



그 모습을 길 한 가운데에서 바라보니 이런 모습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고택, 송광사의 부속건물 '화엄전'과 '향로전'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부터 송광사 경역이다.



화엄전 담벼락을 담아봤는데, 글세...  별로다(사진이).



화엄전 대문앞에서 화엄전 담길을 다시 담아본다.



조금 더 넓게 화엄전과 향로전의 바깥모습을 담아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건축양식과 더불어 주위의 풍광이 개인적으로 너무나 맘에든다.



대남무에 둘러쌓인 향로전 끝 건물의 모습.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만나는 송광사 후원과 한옥식 화장실.



조계산길에서 송광사 앞을 흐르는 '신평천'과 '육화당', '사자루'와 '침계루', '우화각'의 모습은

국내 어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미학과 운치가 겸비한 건축물 일것 같다.



[능허교(凌虛橋)와 우화각(羽化閣)]

송광사 경역 입구역활을 하는 능허교(凌虛橋, 무지개다리) 위의 우화각(羽化閣)을 담아봤다.



송광사 '고향수'와 '우화각'.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송광사를 예방할때 소생했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다.



'능허교' 위의 '우화각'(羽化閣)으로 들어선다.

우화(羽化)란 우화등선(羽化登仙) 즉,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그런 다리 위의 집이란 말이다.



[임경당(臨鏡堂)]

계곡 바위에 걸터 앉아 흐르는 계곡물에 두 발을 담근것처럼 두 기둥이

신평천에 두리운 임경당의 모습은 아마도 어디에서도 보기드문 아름다운 모습이다.



'임경당'을 배경으로 넓게 담아봤다.



'우화각' 내부 천정에 붙어있는 '송광사'현판.

송광사(松廣寺) 글씨 좌측 하단에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의 낙인이 보인다.


                    김규진(金奎鎭, 1868년~1933년)은 대한제국와 일제 강점기의 서예가, 화가이다.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이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대필서로 이름을 날렸고, 전국의 궁전·사찰·현판에 많은 글씨를 남겼다.




'우화각'을 지나니 바로 송광사 '천왕문'의 '사천왕'을 만남다.



좌측에 종무소, 우측에 법성료, 그리고 중앙의 종고루 아래 통로를 통해 대웅보전으로 들어선다.



[송광사 대웅보전(大雄寶殿)]

지금의 대웅보전은 1951년 소실 후 1988년 송광사 8차 중창 당시 다시 지어졌다.

삼세(과거 현재 미래)제도를 염원하는 삼세불 즉,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셨으며,

각 부처님의 좌우에 관세음보살 · 문수보살 · 보현보살 · 지장보살 등 4대 보살을 모시고 있다.

108평 규모의 대웅보전은 독특한 건축형태와 단청으로 현대 한국 전통건축이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대둥보전 우측에 자리한 '지장전'.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섰고,

그 좌우로 시왕(十王)이 모셔져 있고 천도재와 49재, 영가천도 등 각종 재를 지내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고 원을 세운 보살로 삭발한 모습을 하고있다.



대웅보전 좌측으로는 '승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을 비롯한 125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대웅보전 좌측의 '응향각' 뒤로는 '관음전'과 '하사당'의 지붕이 부드러운 곡선을 뽐내고 있다.



대웅보전 한귀퉁이에는 비루먹어 고달프게 자란 분재 소나무가 아름답기 보다는 애처로워 보인다.



대웅보전 뒤로 돌아와야 보이는 '수선사'.



그리고 수선사 오르는 돌계단, 입구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수선사 돌계단에서 대웅보전 뒷면의 문을 바라보니 문살의 모양이 가히 기하학적이다.



그 문양이 아름다워 대웅보전 처망하 어우러진 문살의 모습을 넓게 담아봤다.



송광사 경내에서는 어느건물, 어느 위치에서, 어디를 바라봐도 아름다운것같다.



'응진당' 앞에서 보는 '상사당'과 '하사당'.



[관음전(觀音殿)]

그리고 그 뒷편으로 고색이 뚜렷한 '관음전'을 만난다.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음전 처마밑에서 올려다보니 고색 찬란한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관음전에서 상사당을 올려다보니 돌계단위의 쪽대문이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다.






관음전 뒤로 돌아 30여계단을 오르는길이 보인다.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을 오르는계단이다.



보조국사 감로탑비와 부도.

지눌스님은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 1세인 불일 보조국사 부도탑이다.



지눌스님 부도를 배경으로 송광사를 내려다 본 모습.



그리고 송광사와 멀리 조계산도 같이 담아본다.



지눌스님 감로탑을 내려와 송광사 경내도 다사한번 담아본다.



관음전앞 마당에 놓인 감로수.

물은 수량도 풍부하고 시원해 보이는데 음용으로는 부적합한듯하다.


종각루 외편 에 있는 '한붕화상'(漢朋和尙)감로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우나 '화상'이란 수행을 많이한 스님의 높임말이다.



경내에서 우화각을 나오며 임경당을 담아보고,



우화각에서 사자루와 육화당도 다시한번 담아본다.



육감정(六鑑亭)과 삼청선각(三淸僊閣)의 현판이 달린 임경당(臨鏡堂).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曹溪山 大乘禪宗 松廣寺) 일주문]

송광사 일주문을 나오며 일주문을 바라본다.



신평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와 임경당.



송광사 공덕비.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선사께서 창건하신 이래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비롯해 16 국사스님을 내셨고

대대로 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역사 깊은 전통 도량이기에 공덕비 또한 많은것 같다.



일주문을 나와 공덕비를 지나니 '하마비'가 보인다.

하마비란 이곳에서는 거들름을 피지말고 말에서 내리라는 뜻으로 겸손해지라는 뜻 일께다.






맨 우측의 '조계산송광사사적'비와 각종 공덕비.

이곳의 공덕비는 '청신녀(淸信女) 아무개'로 시작하는걸로 보아 여성분들의 공덕비 인것같다.



'불일암(佛日庵) 무소유길'로 건너가는 구름다리.



우리 건강에 유익하다는 피톤치돈이 많이 뿜어낸다는 편백나무숲.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 만나는 소나무숲길.



송광사 오름길에 차도옆 인도와 연결한 '극락교'.

극락에 들어가는 길이 이러할까? 신선이된 기분으로 신평천 위의 극락교를 건너본다.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비.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선사께서 창건하신 이래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비롯해 16 국사스님을 내셨고 대대로 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역사 깊은 전통 도량으로 법보종찰 해인사, 불보종찰 통도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종찰로 꼽히고 있습니다.




송광사 매표소를 나오며 오늘 조계산을 축으로 둘러본 선암사와 송광사의 약 10Km 여정을 마무리한다.


아직 못본것이 많아 볼것도 많고, 하고싶은게 많아 할것도 많은데 .....

여지껏 살아오면서 사는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했을 법도한데 .....

아직도 사는게 서툰것은 얼마나 더 살아봐야 되는건지 .....


몸과 귀와 눈은 조계산 선암사와 송광사에 있었는데 마음은 먼 허공을 떠똘다 온 기분이다.

^^**^^





A Black Guy  /  [티벳] He Xi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