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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산

백악산,白岳山 (북악산,北岳山) - 혜화문 - 낙산 - 흥인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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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漢陽都城) :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도성(都城)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서울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 안의 공간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줄여서 한성(漢城)으로 불렸으며,

 사적으로서의 명칭은 지정 당시 서울성곽으로 정했다가 2011년 현재의 명칭 한양도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백악산(白岳山) : 북악산.

 백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으로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北岳)이라 칭했습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 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습니다.

 

 

 

 

산행일 : 2021년 6월 13일 (일)           날씨 : 모처럼 맑음

산행길 : 들머리 - 창의문(북악산 1번 출입문) ,      날머리 - 흥인지문(흥인지문 공원).

            * 창의문 - 북악산 1번 출입문 - 청운대 안내소 -  청운대 -  북악산(백악산) - 청운대 - 촛대바위 - 숙정문 -

              숙정문 안내소 - 말바위 쉼터 - 와룡공원 - 혜화문 - 낙산공원 - 흥인지문 공원 - 흥인지문.

 

 

좀처럼 트레킹에 나서지 않던 일요일 아침,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자하문고개, 윤동주 문학관 앞에서 하차하여 북악산 코스 트레킹을 준비합니다.

 

 

창의문 입구 작은 광장에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폭파를 목적으로 침투한 북한 124군 무장공비 31명을 가로막고

검문을  벌이다 교전 중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있고,

 

 

탐방로 입구 쪽에는 1.21 사태 때 31명의 무장공비와 교전 중 전사한 정종수 경사의 동상을 숙연한 마음으로 지납니다.

 

 

창의문과 창의문 안내소.

 

 

예전에 오르던 창의문 탐방로 입구는 공사를 이유로 막혀있고,

대신 창의문을 우회하여 1번 출입문으로 갈 수 있는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창의문(彰義門) : 조선시대 4소문 중의 하나로서  북문 또는 자하문이라고도 합니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에 세운 문으로 4대문 중 북대문인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었으므로 경기도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왕래했습니다.

 

 

창의문 안내소에서 봤던 안내를 따라 1번 출입문으로 가는 부암동 골목길이 새롭습니다.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가 보니 예전에 부암동에서 북악 팔각정을 지나 형제봉을 거처 북한산으로 가던 길목이었습니다.

 

 

창의문에서 10분 남짓 오르니 북악산 1번 출입문을 만납니다.

이길 또한 본인이 가끔은 즐겨 찾던 나름 근사한 카페가 근처에 있어 그제야 아하~ 하고 아는 척을 해봅니다.

 

 

1번 출입문 입구를 들어서니 복잡하게 안내문을 붙이고 있는 또 하나의 철문을 지납니다.

 

 

이 탐방로는 2020년 11월에 개방되었으니 1968년 1.21 사태 이후 52년 만에 일반에 개방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길을 오르기 시작하니 신선한 숲 향기가 오감을 자극하고 아까 보았던 카페도 바로 지척에 보입니다.

 

 

뒤편으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기차바위와 인왕산 능선이 조망되고,

 

 

주택가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원시림처럼 우거진 싱그러운 녹음과 함께 맑은 공기와 새들의 울음소리만이 들립니다.

 

 

산을 오르는 계단길이 역시 벅차지만 창의문에서 오를 때보다는 난이도가 한결 수월한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50여 년을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은 곳이니 맑은 공기와 정기가 새롭기만 합니다.

 

 

오름길에는 이제 일반에 개방되었기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경비초소도 보입니다.

 

 

그렇게 새로움을 만끽하며 한 고개를 넘으니 인왕산길(북악산로)과 만나는 3번 출입문 주차장을 만납니다.

 

 

3번 출입문에는 청운대 안내소가 있고 청운대 안내소에서 표찰을 받아 목에 걸고 북악산 트레킹을 계속합니다.

 

 

하지를 1주일 정도 앞에 둔 날씨는 완전한 여름 날씨를 보여주고 있고,

땀 한번 흠뻑 흘리며 성곽에 다다르니 북악산 정상을 가기 위해 창의문 방향으로 거꾸로 오릅니다.

 

 

한양도성 성곽 외곽길로 북악산으로 오릅니다.

 

 

한양도상 외곽길에서 내곽으로 들어서며 보이는 북한산 주능선이 뿌연 도심의 연무 속에서 길게 늘어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청운대를 알리는 작은 알림 석.

이곳은 서울시내 경치를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은 관전 명소인데 오늘은 가시거리가 별로여서 온통 뿌였습니다.

 

 

청운대에서.  

 

 

청운대와 북악산 중간쯤에 만나는 총상 입은 소나무.

이 소나무의 총상 흔적이 1.21 북한 무장공비의 만행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파르게 오르는 오르막길.

이 오름길도 만만치는 않지만 창의문에서 직접 오르는 길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가파른 성곽길을 치고 오르니 저만치 백악산(북악산) 비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백악산(白岳山) : 백악산(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입니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습니다.

문화재청은 2009년 명승 제67호로 지정하면서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산악지도나 관광안내도에는 아직도 북악산으로 많이 불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양도성 트레킹에서 제일 높은 백악산을 찍었으니 이제는 내려가며 풍광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까 지나온 청운대를 다시 지나고,

 

 

생각보다 복잡하게 엮여있는 탐방길을 요리조리 찾아봅니다.

 

 

뒤편으로 아까 다녀온 백악마루가 시원한 초록옷을 입고 서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경쾌하게 펼쳐지는 한양도성과 멀리 뿌연 시내 모습과 남산도 관망해봅니다.

 

 

숙정문으로 향하며 중간에 촛대바위 쉼터로 향합니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자리한 촛대바위입니다.

 

 

촛대바위 :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습니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촛대바위에서 숙정문으로 내려오며 성곽 안쪽에서 성곽 바깥 풍경을 감상해봅니다.

 

 

내리막길에서는 성북동 일원이 보이기 시작하고,

 

 

좌측으로는 북악 팔각정 능선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만나는 숙정문의 옆모습이 보입니다.

 

 

숙정문(肅靖門) :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 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입니다.

 이 문은 1396년(태조 5) 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습니다.

 

숙정문 앞에서.

 

 

오늘 트레킹 코스를 제대로 가려면 숙정문 안쪽에서 말바위를 거처 와룡공원으로 가야 하는데,

숙정문 현판을 찍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숙정문 안내소에서 표찰을 반납하고 다시 말바위로 오릅니다.

 

 

말바위 오르는 길이 멀지는 않지만 숙정문에서 내려오면 될 길을 다시 오르려니 땀좀 흘려봅니다.

 

 

말바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구불구불 몇 구비 꺾어진 계단길도 올라야 합니다.

 

 

하지만 경치는 오른 만큼 보이는 법, 성북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은 거쳐가아할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이지만 일단 말바위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올 겁니다.

 

 

서울의 우수 조망명소로 알려진 말바위 쉼터의 말바위.

말바위 유래 :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쉬던 자리라 하며 말(馬) 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末) 바위라는 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바위에 벼락이 많이 친다고 해서 벼락 바위라고도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

 

 

말바위 쉼터에서 내려다보이는 종로구와 시내전경을 보니 옛 선인들이 즐겨 찾은 이유를 알것 같습니다.

 

 

말바위쉼터에서 보는 인왕산과 백악(북악) 산.

 

 

말바위 쉼터에서 모처럼 부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말리고 와룡공원방향으로 향합니다.

 

 

와룡공원 가는 길목의  성북동 이야기.

 

 

한참을 내려오니 와룡공원으로 통하는 성곽이 열려있습니다.

 

 

와룡(臥龍) 공원 :

 1984년에 개원한 공원으로 서울 우수 조망명소인 북악산 '말바위'를 내려와 성곽길을 따라가면 와룡공원이 나옵니다.

 와룡공원은 삼청공원, 창경 공원, 북악산 도시자연공원이 인접해 있는 곳으로 용(龍)이 길게 누워있는 형상을 하여

 와룡동이라고도 합니다.

 

 

와룡공원을 뒤로하고 혜화문 이정표를 보며 발길을 옮깁니다.

 

 

혜화문을 가기 위해 이어지는 유연하게 구부러져 흐르는 듯한 성곽길이 아름답습니다.

 

 

 

이곳은 야경도 예뻐서 가끔 서울 야경사진으로 소개되는 곳 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변 주택과 소통되는 암문들이 주변 주택으로 통하는 길과 예쁜 조화를 이룹니다.

 

 

혜화문과 창경궁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좌측 낙산공원길로 향합니다.

 

 

제대로 된 성곽길이 끝날 때쯤 주변 성북동 주택가가 눈앞에 보이고,

 

 

도로변에 내려서서 혜화문으로 가기 위해 정면에 보이는 경신 중고등학교의 왼쪽 길로 향합니다.

우측의 건물은 현재 서울과학고등학교로 예전에는 보성 중고등학교였고 본인의 소년 시절 배움터였습니다.

 

 

혜화문으로 가다가 만나는 도로 바닥에 설치된 한양도성 순성길 동판을 만납니다.

 

 

그리고 만나는 가톨릭 한국 외방선교회 건물도 지납니다.

한국외방선교회 : 한국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복음 선포에 대한 열정, 헌신적인 나눔의 봉사 정신을 본받으며,

한국의 순교자들의 용기와 믿음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설립한 최초의 ‘해외 선교 전문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다시 만나는 조금은 엉성해 보이지만 축조법이 독특한 성곽을 다시 만납니다.

 

 

혜화문(惠化門)을 만납니다.

혜화문은 본인이 혜화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낼 때는 혜화동과 삼선교를 잇는 뒷길로서 그 흔적이 없었는데 

언젠가 서울성곽을 재건한다며 예쁜 모습으로 짠~ 하고 생겨난 성문이다.

 

 

혜화문(惠化門) :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동쪽의 소문이며 숙정문을 대신하여 한양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습니다.   

 동소문(東小門)이라는 속칭이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입니다.

 주변에는 동소문동 지명이 있습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건립되었습니다. 1592년 문루가 불타 1744년에 재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고 1938년에 동소문로와 전찻길을 부설하며 석축과 홍예를 헐었습니다.

 1994년에 원래 위치에서 북서쪽으로 13m 이동하여 복원되었습니다.

 

 

혜화문이 복원되기 전에는 성곽 담벼락 아래 석굴암이라는 토굴 술집이 있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혜화문에서 큰길을 건너 삼선동과 동소문동 방향의 낙산 가는 성곽길로 접어듭니다.

 

 

이곳 성곽길은 그동안 한양도성이 어떻게 보수 유지되어왔는지 축성시기에 따른 여러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을과 연결되는 도로 주변도 예쁘게 다듬어져 있고요,

 

 

성곽 외각 길에서 낙산공원으로 들어서는 석문을 향합니다.

 

 

석문을 들어서니 넓게 가꾸어놓은 공원을 만납니다.

 

 

성곽 외부와 내부를 영결하는 석문 통로도 예쁘고요,

 

 

멀리 북한산을 배경으로 서 보기도 합니다.

 

 

낙산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동숭동, 이화동 일대와 남산도 조망됩니다.

 

 

북쪽으로는 안산, 인왕산, 백악산이 조망되고,

 

 

동북쪽으로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주능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이곳 낙산공원에서 바라보는 서울 야경은 더없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다시 성곽 외곽으로 나와 흥인지문(동대문)으로 향합니다.

 

 

성곽의 보수시기가 다름을 보여주는 성곽과 석축 사이에 핀 노란 금계국이 이체 롭습니다.

 

 

성곽 외곽에서 내부로 다시 들어갑니다.

성곽길을 걸으며 성곽 내부와 외부에서 보는 다른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성곽 내부에는 많은 나무가 심겨있어 더운 여름철에는 나무 그늘길이 반갑기만 합니다.

 

 

드디어 흥인지문 공원에 다다르며 저 아래 도심 속에 묻혀있는 흥인지문을 발견합니다.

 

 

흥인지문 공원 안에서 좀 더 가까이 흥인지문을 담아봅니다.

 

 

흥인지문 공원.

 

 

흥인지문 공원 안쪽에는 노란 금계국이 성곽을 따라 넓게 화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가씨들도 꽃밭에서 추억 담기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

 대한민국 보물 제1호이며, 속칭 '동대문(東大門)'이라 부릅니다.

 본래 ‘흥인문’이었으나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 하여 ‘지’ 자를 넣어 무게감을 실어 주었다고 합니다.

 1996년 일제강점기 문화재 재평가작업을 통해 ‘흥인지문’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고,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인지문은 2008년 숭례문이 불타 소실되면서, 도성 사대 문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축조된 원형을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 때 건립되었으나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입니다.

 

한양도성의 각자성석(刻字城石)

각자성석은 축성과 관령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말합니다.

한양도성에 남아있는 각자성석은 천자문의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과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에는 이처럼 다양한 시기와 유형의 각자성석이 280개 이상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흥인지문을 좀 더 가까이서 담아보며 오늘 한양도성길의 일부지만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물씬 느껴보며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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